매일신문

임재해교수가 새로 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39)달을 거울삼아 삶을 비추는 달노래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옛말이 있다. 양력으로 말하면 6월 농번기에 한참 농사일로 바쁘다가 가을걷이를 앞둔 9월에는 수확의 풍요를 앞두고 여유를 누리는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하는 한가위 명절도 '8월 신선'이 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한가위는 신라 유리왕대에 기록이 보일 정도로 오랜 전통을 지녔으며, 맏물 곡식으로 송편과 술을 빚어 조상께 바치는 명절이다. 중국도 우리 한가위의 영향을 받아 뒤늦게 중추절을 즐기게 되었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첫 보름인 한가위는 맑은 날씨로 달이 유난히 밝다. 따라서 가을의 맑은 하늘과 밝은 달이 짝을 이룬다. 달노래는 밝은 달을 거울삼아 사람들의 세태를 읊은 노래이다. 한가위의 밝고 맑은 달이 지금 우리의 삶을 아주 어지럽게 비추고 있다. 나라 안은 이용호 관련 비리와 의혹이 집권세력 친인척들과 난마처럼 얽혀 있고, 나라 밖에는 테러보복으로 '더러운 전쟁'을 준비중이다. 우리 어른들은 달이라고 하는 거울에다 어떤 삶과 생각을 비추어 보았을까. 팔월이라 한가웃날

오만 사람이 다 새옷을 입고

춤을 추는 듯 하건마는

슬프다 우리 부모 어데 가고

새 옷 입고 춤추는 줄 모르는고

진양 사는 이옥인 할머니의 달노래 가운데 8월 대목이다. 한가위를 맞이하여 세상사람들이 모두 새 옷을 입고 차례를 올리며 춤추듯 즐기는데, 돌아가신 부모님은 춤출 줄 모른다고 애석해 한다. 한창 일이 바쁠 때에는 일손이 아쉬워 부모 생각이 나지만, 여유가 있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는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또 부모 생각이 난다. 좋을 때나 바쁠 때 자연스레 부모 생각이 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부모 사랑이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노던 달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백혔으니

한 가지는 옥녀 주고 또 한 가지 선녀 주어

선녀 옥녀 잠자는 방에 숨소리가 둘일레라

의령 사는 최양순 할머니의 달노래이다. 앞의 노래처럼 정월부터 섣달까지 일년 열두 달을 노래하는 뒤풀이 형식이 있는가 하면, 밤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을 노래한 것도 있다. 달노래의 상투적 시작은 으레 '달아달아 밝은달아 이태백이 노던달아' 하고 시작된다. 그리고는 달 속의 계수나무를 옥도끼로 찍어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집을 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싶다고 노래한다. 이 노래는 좀 별나다. 달 속에 박혀 있는 계수나무를 베어다가 한 가지는 옥녀 주고 또 한 가지는 선녀를 주겠단다. 그리고 선녀 옥녀 자는 방에 숨소리가 둘일레라고 노래한다. 옥녀나 선녀나 다 천상의 여인들이다. 계수 가지를 지니고 잠든 방에서 두 여인의 숨소리가 제각기 들린다는 것이다. 무슨 뜻일까. 만일 이성간이라면 사랑의 행위를 하느라 거친숨소리를 제각기 내뿜을 만하다. 그러나 여인들끼리니 그럴 리 없다. 오히려 남성에게 간섭받지 않고 각자 제 숨소리를 새근새근 고르게 내면서 잠이 든 천상여인들의 포근한 잠자리가 평화롭다. 남녀가 만나는 잠자리는 사정이 다르다.

너~ 너~그 워서~ 자구 와

너~그 워서~ 자구 와

칠산~ 염~산 자구 와

연재방이서~ 자구와

한~산 세모시 슥자~ 수건~

수년~자~지 선을 둘러

임~이 홧대다 걸어놓고

임도~ 씻구~ 나~두 씻구~

그 수건~이~ 떨어~지면

님~두 정~두 다~ 그만이란다

보령군 편창분 할머니의 달노래이다. '너거 어디서 자고 왔는가?' 하고 묻는 질문에는 의혹을 캐는 수사관적 의도가 배어 있다. 대답은 칠산, 염산 자고 왔을 뿐 아니라연자방아서 자고 왔다고 한다. 어느 곳도 잠잘 만한 곳이 아니지만 특히 연자방아서 잠잤다고 하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방앗간은 밀회의 장소일 뿐 아니라 성적 상징성을 띤 공간이다. 연자방아도 '고줏대'를 중심으로 암수 두 짝이 결합하여 맞물려 돌아간다는 점에서 성행위를 연상하기 충분하다. 다음 대목은 밀회에 의한 야합이 아니라 부부간의 사랑을노래한 것이다. 한산의 특산품인 '고운 모시'로 석자 수건을 만들어 자주 색 선을 둘러 장식하고 님의 횃대에 걸어둘 뿐 아니라, 그 수건을 함께 쓴다고 한다. 시집가서 남편과 정답게 사는 모습을 상당히 에둘러 은유한 것이다. 수건으로 '임도 씻고 나도 씻고' 하는 대목을 예사롭게 얼굴이나 닦는 용도로 보면 부부간의 소박한 살림살이에 그치지만, 잠자리에서 특별한 부분을 닦는 용도로 보면 부부간의 정분과 금슬을 상징하는 것이 된다. 어느 쪽으로 보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소리를 하고 듣는 사람들의 개인적 정서에 달렸을 것이나, 그 수건이 떨어지면 님도 정도 다 떨어진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거기다가 자주 색 선을 두른 사실까지 고려한다면, 아무래도 낯이나 닦는 수건은 아닌가 보다. 서울~이나 다리~밑이~

애기네~ 복사를 심었~더니

가지~가지~ 벌어~서~

봉오리~봉오리~ 짓어서

올러~가~는 구관~님덜~

맛이~ 좋아서 다 따먹구~

네려오~는 신간~님덜~

빗이~ 좋아서 다 따먹구

부여 사는 정인순 할머니의 달노래이다. 서울 길목에 복숭아나무를 심었더니 가지가 벌어서 봉오리가 달게 맺히고 복숭아가 무르익자 올라가는 구관 사또는 맛이 좋다고다 따먹고 내려오는 신관 사또는 빛이 좋다고 다 따먹었다고 한다. 복숭아나무를 심고 가꾼 사람들은 소외되고 벼슬아치들이 오르내리며 그 열매를 다 가로챈 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벼슬아치들이 문제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속칭 이용호 게이트를 보면, 어느 한 구석 성한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정·관계가 두루 썩었다.부정을 감시하고 비리를 밝히며 범죄를 수사해야 할 정부의 공권력이 부정과 비리와 범죄에 난마처럼 얽혀 있다. 공권력의 상징인 검찰과 경찰 간부들이 두루 이용호 게이트에 얽혀서 수사를 받고 있는 마당에, 조폭은 국회의원을 조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수사 받아야 할 조폭은 으름장을 놓고 수사해야 할 검찰은 수사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외압여부와 로비 금품이 오간 사실을 한참 수사중인데, 여전히 돈보따리를 싸들고 수사 관련자들에게 로비를 하는 인간들이 이들 공권력의 조직이자 친인척들이다.'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전현직 검찰 총수와 간부가 끼어 있는 사건을 특별감찰부가 나선대서 제대로 비리를 밝힐 것으로 믿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검찰과 경찰 어느 쪽도바른 말 하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자기 말을 스스로 뒤집어엎는 것은 물론 저희끼리 진술도 다르다. 말 바꾸기의 방식도 상투적이다. '알지도 못한다' '만나지도 않았다' '만났으되 멀찌감치 있었다' '주선했으되 돈은 받지 않았다' '부탁했지만 압력은 행사하지 않았다' 부동산 투기의혹에 대한 건교부장관의 말 바꾸기도 그렇다. 재형저축을 들이대다가 말이 되지 않자 몇 시간만에 다른 금융상품을 활용했다며 말을 뒤집었다. 허아무개 경찰간부는 말 바꾸기를 하다가 궁지에 몰려 아예 잠적하는 소동까지 빚었다. 뻥 대통령에 뻥정부에 뻥 공권력이 온갖 비리를 뻥뻥 터뜨리고 있다. 지금 국민들은 '8월 신선'이 아니라 '8월 비리'에 가위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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