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그렇다. 산에 가면 산이 좋고 바다에 가면 바다가 좋다. 동해바다와 만나는 설악산은 그래서 더욱 좋다. 갓잡아 올린 생선의 펄떡거림, 그런 싱싱함이 느껴지는 동해바다. 그 바다에 바짝 붙어 있는 정동진. 여기서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설악산. 단풍에 물든 설악산은 지금 '행락객 주의보'. 지난 주엔 전국에서 수만명이 몰려들어 밤늦게까지 하산하지 못하는 진풍경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간다. 동해 일출에 설레다 파도소리에 귀를 씻고, 붉게 빛나는 단풍에는 취할 수 있으니까.
'덜커덩, 덜커덩'. 학창시절 추억이 새삼스러운 무박2일의 설악산 기차여행. 그러나 멤버는 그때와 다르다. 부부나 연인, 아니면 가족.직장동료들이다. 동대구역을 떠난 기차가 영주를 지나니 강원도 땅. 태백, 도계, 신기, 동해, 그리고 정동진. 태백산맥을 넘어가는 기차는 수도 없는 터널을 지나고 높은 고개를 오를때면 앞뒤로 전.후진 하며 올라가는 스위치백 묘기도 보여준다.
승무원의 안내방송에도 피곤이 잔뜩 묻어날 때쯤 기차는 정동진역에 도착한다. 달리는 기차안에서 동해바다의 장엄한 일출을 맞이한 아쉬움 때문인지 승객들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예전 TV드라마 '모래시계'의 영향이 여지껏 유명세를 타는 듯, 사람들의 '입소문'을 확인하려는 듯 너도나도 덩달아 급해진다.
새벽바다. 수면위로 장엄한 동해일출.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 비릿한 바닷바람. 그리고 술렁이는 사람들. 백사장은 이미 만원. 주변이 소란스러워도 저마다 생각에 잠기는 듯 하다. 옛추억의 백일몽으로 잠시 빠져든다. 연인들이나 철부지 꼬마들은 새로운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겠지만. 조그만 역사를 옆으로 한 채 하얀 백사장과 파도가 레일에 닿을 듯 나란히 달린다. 이 아침 낯선 바닷가 일출 풍경. 사람들은 서로 새로운 다짐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여유를 찾는 것 같다. 그런 연유때문에 정동진이 꿈틀거리는 것이 아닐까.
정동진에서 설악산으로 달린다. 설악산 중에서도 남설악. 양양방면 7번국도를 달리다 44번국도로 접어들면 바로 한계령(해발 917m). 가파른 오르막을 버스가 휘감듯 돈다. 멀미가 날 지경이다. 초입의 국도변 설악으로 눈길이 자꾸 간다. 아직은 단풍의 농익은 자태를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오색약수를 지나자 사태가 달라진다. 한 굽이를 돌 때마다 달라지는 산빛. 단풍! 또 단풍! '아…'하는 탄성이 터진다. 빙그레 웃음이 번진다. 밤을 꼬박 새워 달려온 강행군. 그러나 피로는 잠시 접어 두고 단풍과의 만남을 재촉하는 활기가 몸 어딘가에서 새로 솟는다.
한계령은 차량들로 만원. 잠시 정차할 틈새도 보이지 않는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칠형제봉 바위틈새뿐 아니라 온산이 붉은 빛 장관이다. 설악 단풍은 능선보다 계곡쪽이 일품이라고 한다. 특히 외설악 천불동 계곡이나 내설악 백담사 계곡, 남설악 주전골은 유리알같은 계곡물에 단풍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치 물들어 있는 것처럼 착각케 한다.
남설악의 백미 주전골로 차를 돌린다. 주전골은 한계령 오른편 남설악 점봉산(1,424m)의 계곡중 하나다. 용소 매표소에서 오색약수까지 3.2㎞에 이르는 계곡이다. 용소폭포, 금강문, 선녀탕, 12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와 바위가 연이어진다. '주전(鑄錢)골'은 조선시대 도적들이 이곳 바위동굴에서 놋그릇을 녹여 위조 주전을 만들다 적발됐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안내판이 알려준다. 사실여부를 떠나 그런 은밀함이 왠지 친근하게 다가온다.
용소폭포에서 출발하면 내리막길. 위험한 지역은 철제난간과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이무기가 용이 돼 승천했다는 그럴듯한 전설이 있는 용소폭포에서부터 비경은 시작된다. 걸음을 멈추고 싶어도 뒷사람에게 떠밀려 내려간다. 점봉산의 기암괴봉이 여기 불쑥, 저기 불쑥 계곡위로 얼굴을 내밀면 그 위로 단풍잎이 하늘거린다오색약수까지는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정도면 충분하다. 12폭포 가는 길은 입산금지. 사람이 덜 붐비는 제2약수에서 물맛도 한번 보고. 뭔가가 톡 쏘는 맛에다 철 성분이 확 느껴진다. 오색석사(성국사)에서 다시 한번 봉우리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눈을 감아도 그 빛깔이, 그 자태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동대구역과 삼성여행사는 매주 토요일 밤 11시50분에 동대구역을 출발하는 남설악 단풍테마열차를 운행한다. 053)954-7788, 43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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