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팽개쳐진 '문화재 행정'

문화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으나 행정당국의 문화재 전문인력은 턱없이 부족해 초기 정책결정 오류 등 부실행정이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인구 250만 대구시에 문화재 전문인력이라곤 문화예술과에 학예연구사 2명이 전부. 일선 구.군청에는 학예연구사가 아예 전무한 가운데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이 문화재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그나마 잦은 이동으로 지역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관심마저 결여된 상태이다.

이때문에 지금과 같은 편제와 인력으로는 개발 인허가 과정에서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부족과 업무능력 미비로 개발의 논리아래 파괴 또는 훼손돼 가는 문화유적의 유지.관리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이다.

대구시 달서구 진천동 사적 제411호 선사유적공원 일대의 경우 유적지와 불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사방에서 각종 건축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적 주변 500m 이내의 건축 관련 행위가 사적에 나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경우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도록' 한 규정을 무시하고 건축허가를 내줬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에는 또 이곳 선사유적공원과 불과 1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전 지표조사도 없이 아파트 건립허가를 내줬다가 말썽을 빚었다. 뒤늦게 선사유적이 확인되고 시굴조사를 한 결과 중요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자 개발과 보존문제를 두고 문화재위원회조차 심의에 진통을 겪었는가 하면, 계속된 공사연기에 따른 시공업체와 입주민들간 갈등도 현안으로 남아있다.

지난주 이 아파트 신축예정지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원형주거지와 고려시대의 건물지등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유물과 유적이 발굴돼 이 일대가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유적지임이 다시 입증됐다.

지난 1993년 대규모 택지개발이 진행된 수성구 시지동 공사현장에서는 삼국시대 취락유적이 발굴작업을 코앞에 두고 파괴돼 당시 문화재계가 '시지동의 폭거'로 규정하며 문화재관리정책의 맹점을 비난하기도 했다.

달성 본리리 고분군의 대규모 토목공사와 문산정수장 건설계획 과정에서도 유사한 시행착오가 반복돼 뒤늦은 지표조사를 벌였는가 하면 고대역사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와 유적들이 사라지는 아쉬움을 남겼다.

양도영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 등 문화재전문가들은 풍납토성의 발굴유적 훼손사건 이래 10년 세월이 흘렀지만 문화재 당국의 행정부재로 '착공-유적발견-시공중단'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문화재관계자들은 또 "각 자치단체가 지역내 매장문화재를 조사.관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문화재 전문인력이라도 확보, 사전 정책결정 오류를 예방하고 공사연기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주민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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