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50ml 위스키

술에 관한한 한민족의 기개(?)는 세계에서 알아 주는 모양이다. 쉴새없이 돌리는 잔 공세에 외국인은 주눅이 들고 '폭탄주'에 질겁을 한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예로부터 '고주망태'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실수를 해도 술취한 사람의 짓이거니 용인하는 것이 우리의 음주문화이다. 음주습관과 관련한 우스갯소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남침(南侵)을 포기한 이유 중 하나가 '폭탄주 제조'에 있단다. 밤마다 폭탄제조소리가 남쪽하늘에 가득하다는 고정간첩의 보고에 엄두도 못낸다는 것이라나, 어쩌고 저쩌고다.

▲우리 전통의 술인 약주나 막걸리 및 소주.맥주 등을 제치고 독한 술이 우리의 위장을 흔들어 놓는 가 보다. 올해 위스키 소비량이 IMF관리체제 전보다 능가할 지경이라니 위스키 판매 업체는 술에 찌들지 않고서도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지난 98년 150만상자였던 위스키 판매량이 올해는 거의 300만상자에 이를 것으로 주류업계는 예측 할 정도다. 이런 호황기미는 지난 98년에 위스키사업을 팽개쳤던 두산이 다시 뛰어들 준비태세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처럼 소비를 부채질한 요인은 한국인의 술인심과 습관을 토대로 개발한 500㎖모델. 진로가 지난 94년 '임페리얼'을 생산하면서 세계 최초로 500㎖들이를 내놓았다. 세계 주류시장에서는 375㎖와 750㎖짜리 위스키가 주류인 점을 감안하면 이 500㎖은 전적으로 한국주당(酒黨)이 공략(攻略)대상인 셈이다. 서양에서는 혼자서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은 서너명이 함께 '접대자리'에서 먹는 경우가 많은 점을 노렸다. 여러명이 폭탄주를 마시면 375㎖는 턱없이 부족하고 750㎖은 조금 부담스럽다. 따라서 '한국인에게 딱'인 500㎖위스키로 시장을 개척한 전략이 맞아 떨어진 셈이다.

▲어쨌거나 불경기에도 술에 취하지 않고는 편하게 잠들지 못할 세상 형편이 고급 양주를 들이키게 하는지도 모른다. 어디를 둘러봐도 희망이라곤, 기댈 언덕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공을 들여 키운 자식들은 학교를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고, 살림살이가 불어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말만 떼면 국민들을 위한다는 정치인들이 제몫 챙기는 일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모든 것을 대권(大權)을 향해 힘을 겨루는 여.야당은 국민이야 어떻게 돼든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참패하고도 자기반성이 부족한 여당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다. 이래저래 술들이킬 세상이지만 내일을 위해 자제하지 않고 어쩌랴.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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