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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기본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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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부모님이 집으로 전화하여 기차시간이 임박하니 아버지 주민등록증을 들고 빨리 역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나는 너무 급해 한달음에 역으로 달려갔다. 숨이 턱에 차서 역에 도착해서 보니 주민등록증은 없고 나만 미친 듯이 뛰어가고 만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주민등록증은 찾지 않고 '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바로 택시를 타고 또 줄창 달려서 역으로 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날 부모님은 결국 기차를 놓쳐 일을 망치고, 나는 나대로 역으로 달려가느라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대로 급했던 성의는 온데간데없고 남은 것은 눈물 쏙-빼는 호통과 그런 자신에 대한 허탈감뿐이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리도 급히 달려갔단 말인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게 급하다는 것에 사로잡히는 순간, 목적은 아랑곳없어지고 성의와 열의는 열에 열 낭패를 보고 만다. 개인적으로야 억울하고 다소의 자책과 원망으로 끝이 나지만 사회적인 문제일 경우에는 그 파장은 차원이 다르다. 강의할 때의 일이다. 학생 하나가 취업을 위해 영어학원을 다니느라 수업을 성실히 할 수 없다고 포고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절이 시절이니 만큼 나는 크게 양보하여 교양수업인 내 수업이 '교양차원'이 되기 위해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들을 몇 가지 일러주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우리 수업이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도 지켜주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기본이 없는' 그 학생에게 F학점을 주었다. 성적이 발표되는 날, 그 학생으로부터 두통의 메일을 받았는데, 어떻게 선생님은 최소한의 기본도 지키지 않고, 당자인 자신에게 상의 한마디 없이 F학점을 줄 수 있느냐는 항의 메일이었다.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반성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학과 철학이 자리를 잃게 되는 대학은 바로 이런 모습이로구나… '현실적으로는 취업달성.이념면에서는 세계화실현'이라는 집단 성급증에 걸려 선생은 갈수록 야박하고 치사해지며, 학생은 무능하고 뻔뻔스러워진다. 그러면서 전반적으로는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무력해져 간다. 개인이든 사회든 성급함에 사로잡히게 되면 목적을 잊고 무작정 달리거나 자신에게만 맞는 기본 아닌 기본을 내세워 정작 '우리의 기본'은 잊어버리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소통분열인데, 소통분열은 본질적으로 반사회적이다. 기본이란 이런 것이다: 밥을 짖기 위해서는 꼭 적당량의 물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없으며 건너뛸 수 없는 것. 가만 들여다보면 답은 뻔하다. '급하다'는 주문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일. 그 여유로 우리의 '기본'을 점검해보는 일.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 오늘 당장 주변을 돌아보자. 더불어 사는데 내가 참아야 하는 일이 있다면 당장에 기꺼이 참자. 나의 미각과 취향을 포기해보자. 이것이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기본이 아닐까.

갤러리 M큐레이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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