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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영어 유감

동쪽 하늘 끝 지평선에 붉은 기운이 스치고, 새벽의 푸르름이 어둠을 걷어 내면 하루가 시작된다. 넓고 조용한 거리에는 환경미화원들의 비질하는 소리까지 들려 온다. 이때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운동하는 사람들이나 학원에 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학원에 몰리는 사람의 대부분은 바로 영어를 배우려 한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에 다니는 한 영어는 필수이다. 중고등학교에서는 물론, 학문의 전문성을 추구하는 대학에서도 교양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만만치 않다. 심지어는 "영어야 너를 사랑해"라는 플래카드를 길가에 붙여놓고 어릴 때부터의 영어교육을 권장하고 있다. 영어에 대한 인식이 곧 세계화의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말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세계관의 근본적인 틀을 형성시켜 준다. 또한 말을 통해서 많은 인간관계가 이루어 질 수 있고, 새로운 문화가 전개된다. 모국어나 외국어를 막론하고 말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신의 세계가 넓혀진다. 그러므로 하나의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사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폭을 넓히려는 의도의 표현이다. 자원이 적은 우리로서는 외국어를 배워 세계의 자원과 정보를 이용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미국이나 영국이 세계 자체는 아니다. 그리고 한 나라의 외국어 선택이란 그 나라의 경제·정보적 필요가 고려되어야 한다. 개인의 언어선택은 자신의 적성과 장래성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비영어권 나라와 통상을 하거나 그 문화를 배울 때 굳이 영어를 통해서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스페인어나 아랍어의 경우 그 쓰임새도 넓고 경제성도 크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교육도시를 자처하는 도시에도 아랍어과가 있는 대학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최근, 법무부가 국내 체류를 원하는 이란인 난민 신청자의 자술서를 '출국하고 싶다'는 뜻으로 반대로 번역해 강제 출국시켰다며 유엔난민기구가 정부에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일이 그 새벽부터 영어만 공부하고 이란어는 공부한 사람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외국어에 대한 다양한 교육을 통해 영어 이외의 말을 하는 외국인과 우리의 관계는 깊고 진실해 질 수 있다.

김정숙(영남대 교수.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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