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배우자의 사랑과 미움

우리나라 대다수 남편들은 시부모에게 잘 하는 아내를 예쁘게 본다. 상담전문기관인 사랑의 전화(회장 심철호) 사회조사연구실(www.counsel24.com) 조사결과 '시댁 일을 잘 할 때'(28.6%)가 남편이 아내를 예쁘게 보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내가 가장 미워질 때도 '시댁과의 마찰'로 응답한 비율이 25.5%로 최고인 데서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보통의 주부와 남편은 어떤 때 서로를 제일 예뻐하고 미워할까? 세 사람의 생각을 들어봤다.

▶손경옥(40.서울에서 고교 교사로 근무)

#이럴 때 남편이 제일 좋아요

"맞벌이하기 때문에 집안 일을 도와줄 때가 가장 좋죠. 남편이 설거지와 청소는 거의 맡아놓고 하는 편입니다". 손씨는 그럴 때면 늘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하는 느낌에 행복해진다고 했다.

남편의 집안일 돕기는 시아버지 영향이 컸다. 시어머니가 교사로 역시 맞벌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환경에 적응했던 것. 시댁의 남자들이 다 집안일에 익숙해 처음엔 오히려 이상했다. 아이들이 어릴 땐 "아빠"하고 울어 민망할 정도로 잘 도와줬다. 많이 편한 것도 사실. 그래도 손씨는 아직도 여자들의 일이 더 많기 때문에 더 도와줬으면 하는 욕심도 있다.

#이럴 때 제일 미워요

"시댁에 문제가 생기면 남편 혼자서 다 해결해 버립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같이 의논도 하고 그러면 좋을텐데요". 그래서 손씨는 종종 자신이 모르는 시댁 일이 화제에 오를 땐 섭섭해진다. 남편은 괜한 걱정을 할까봐 얘기를 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부부인데….

그러면서 남편 흉보기에 신이 났다. 여행을 좋아하는 손씨에겐 남편의 소극적인 면이 영 불만이다. 아내를 위해 남편이 나서서 여행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감동받을 것 같다고 했다. "예약서부터 내가 다 준비해 놓은 뒤 따라나설 땐 정말 얄미워요".

▶최규열(35.경북전문대학 홍보담당자)

#이럴 때 아내가 제일 좋아요

결혼 5년째인 최씨부부에게 '여보'라는 단어는 어쩐지 생소하다. 아직은 서로 이름을 부를 만큼 신혼을 연장해가고 있는 중이다. 작년, 절약을 강조하는 바가지에 짜증이 날 무렵 아내가 은행통장 하나를 내놓았다. 넉넉지도 않은 생활비를 쪼개 모은 200여만원이 든 통장이었다. "놀랍기도 했지만 아주 유용하게 그 돈을 써야할 형편이라 아내가 대견스럽게 보이더군요. 당차다는 느낌도 들고요".

요즘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뛰어 다니는 아내를 보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굳이 '아내사랑 10계명'을 외지않아도 될 그런 아내의 모습이다.

#이럴 때 제일 미워요

아내와의 의견마찰 1호는 '먹는 문제'. 아내는 식사량도 적지만 입맛도 까다로운 편이다. "모처럼 마음먹고 드라이브를 겸한 외식을 계획했는데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고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 때 그날 일진은 꽝이죠". 그렇다고 좋아하는 돼지갈비만 늘 먹을 수도 없는 일. 외식하겠다고 나섰다가 도중에 포기하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많이 맞춰진 상태다.

또 어쩌다 선물이라도 사들고 퇴근하면 왜 얘기도 없이 사왔느냐고 타박이다. 벌써 '아줌마'가 다 된 걸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이영순(39.대구 수성구 범물동 윤미용실 운영)

#이럴 때 남편이 제일 좋아요

초등학교 6학년인 딸과 일곱 살인 아들 교육을 남편이 책임지고 있다. 미용실 일이 늦게 끝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공휴일에도 잘 쉬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때도 남편이 아이들을 맡죠. 박물관 같은 곳에 데리고 가서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놀아주기도 하고 그러나봐요".

그럴 때면 이씨는 남편에게 여러가지로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러나 마음만으로 그치는 수가 많다. 보통 밤 9시에 퇴근하지만 손님이 밀릴 땐 밤 11시나 돼야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빨래며 식사며 집안 일을 남편이 해놓았을 땐 '이 세상에 이런 남편 없다'싶어 고맙기만 하다.

#이럴 때 제일 미워요

"몸이 아플 때가 제일 서럽잖아요. 그런데도 남편은 몸 관리를 못했다고 짜증부터 내지요". 아내가 아프다는데 꿀물이라도 태워주면 어디 덧나나…. 그럴 땐 이씨는 눈물이 난다. 피곤해서 그런 줄도 몰라주니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불쑥 솟는다.

지금도 이런데 혹 나이들어 아파 누워있으면 어떨까를 생각하면 더 속상하다.

남편이 미울 때는 또 있다. 아이들 공부를 도와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 방법이 문제다. "모른다고 걸핏하면 혼내고 쥐어박기도 하니 아이들이 공부하기를 싫어하죠. 우리 어릴 적 경험에 비춰봐도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잖아요".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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