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공무원.사립학교교원.군인 등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후생활이 보장된 연금소득자들의 '은빛 발걸음'이 달라지고 있다.
일시불 또는 매달 일정액의 연금을 받고 '세월 보내기'에 매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은퇴 연금수급자들'이 창업에 도전하거나 사회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하면 심지어 주유원 등 은퇴전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직종까지 마다않고 있는 것이다.
▨일하고 싶다 : 고교에서 공업기술을 가르치다 3년전 명예퇴직한 윤모(65)씨는 컴퓨터와 자동차정비 등에 능한 자신의 기술을 살려 '기술 컨설팅 업무'를 하기 위해 두달전부터 창업교육을 받고 있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 아내와 살아가는데는 월 100만원을 웃도는 연금이면 충분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이 싫어' 다시 '밖으로' 나왔다.
윤씨는 "요즘 세상이 달라졌다"며 "아직 능력이 있는데 주머니가 넉넉하다고해서 머리를 썩혀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지정 노인자활후견기관인 대구시니어클럽이 11월 한달동안 실시한 고령자 창업교육과정 참가자의 은퇴전 직업을 집계한 결과, 전체 남성 참여인원(39명)의 절반 가까운 15명이 공무원 또는 교사출신이었다.
한편 대구시니어클럽이 지난 10월부터 접수를 시작한 주유원과 경비원 모집에서도 전체 9명 가운데 3명이 은퇴 공직자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유원 모집에 응했던 퇴역군인 최모(58)씨는 "33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난 뒤에도 뭔가를 하고 싶었다"며 "월 190여만원의 연금소득에 매달리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보람을 찾고 싶다 : 초등학교 교장 출신인 이모(72)씨는 월 190여만원의 연금 가운데 30만원을 '뚝 떼내' 이웃에 사는 소년소녀가장 남매에게 보낸다. 올해로 벌써 3년째.
돈만 덜렁 보내는 것은 너무 성의없는 일인것 같아 최근에는 '교장 경력'을 살려 남매의 공부도 돌봐준다. 이씨가 '가정교사'로 나서자 중학교에 다니는 큰녀석은 35등정도에 머물렀던 성적을 20등까지 끌어올렸다. 평생 교사생활에서 얻은 보람을 합한것보다 은퇴후 봉사자로서의 삶에서 이씨는 더 큰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고 털어놨다.
대구시니어클럽이 노인자원봉사자를 모집하자, 불과 며칠만에 50여명의 노인들이 몰려들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교사.공무원 출신. 이들은 휴지줍기 등도 하찮은 일이라 여기지 않고 행사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퇴직교원 60여명으로 구성된 대구교원자원봉사단 김재구(67)부단장은 "퇴직교원들을 중심으로 자원봉사모임이 늘어가고 있다"며 "살아온 경험을 어딘가에 보태고 싶은 탓"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본다 : 전국적으로 공무원 연금 수급자는 15만여명(대구.경북 1만9천여명), 사학연금 수급자도 1만여명에 이른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넉넉한데다 오랜 직장생활 경험도 있어 '은빛 새삶'을 설계하는데 연금수급자들만큼 유리한 위치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구시니어클럽 류우하관장은 "우리사회의 뒤떨어진 '실버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가장 먼저 나서야할 계층은 연금소득자"라며 "자신의 연금을 이웃에 대한 기부로 이어가는 은퇴자들도 늘고 있어 이러한 조류를 '노인운동'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방안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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