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담소 운영 1년 한재흥 목사

26일 오후 대구시 북구 칠성동 대구쪽방상담소. 7, 8명의 쪽방생활자들이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난로가에 둘러앉아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소장 한재흥(42)목사가 40대 남자에게 다가가 "요즘 안 아프세요? 어디 한번 봐요"하고 말을 붙였다.

이 남자는 지난 여름부터 원인모를 종기가 몸 곳곳에 생겨 무척 고생을 해왔는데, 요즘은 무척 좋아졌다고 한다. 맑은 얼굴의 한 목사는 이런 저런 얘기를 꺼집어내며 곧 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쪽방 생활자라고 거칠고 모난 사람들이라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과 잠시만 생활해보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다만 사회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질 뿐이죠". 그는 일주일에 3, 4일씩 상담소에 나와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기도 하고, 직접 쪽방을 찾아가 상담을 벌이기도 한다. 대구에서는 700~800명이 쪽방 생활을 하고 있다.

한 목사는 "여름에는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노숙자로, 겨울에는 쪽방생활자로 전전하는 이들은 나름의 아픈 사연을 갖고 있고, 어찌보면 냉혹한 경쟁사회의 희생자라 할 수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특히 교회가 끌어안고 함께 가야할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한 목사는 이 일에 뛰어든지 채 1년도 되지 않는 새내기다. 잠바차림에 거침없는 말투 등으로 '목사님'의 엄숙한 이미지와 너무나 동떨어진 듯한 그가 쪽방상담소를 시작한 것은 올해 2월. 지난 96년 교회목회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사회선교를 하기로 마음먹은 그는지금까지 동구자원봉사센터 등을 운영해왔지만, 그것으로만 만족할 수 없어 쪽방상담소를 시작했다.

그는 "학생운동부터 민중.빈민교회 등을 해봤지만, 이것만큼 사명감을 느끼는 일은 일찍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때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마라'는 성경 말씀에 고민하기도 했지만,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고.한 목사는 요즘 기업과 개인 등으로부터 쪽방생활자를 위한 지원이 꽤 들어오고 있다는 좋은 뉴스를 알려줬다.

그러나 그것도 겨울철 뿐이지, 평소에는 어느 누구도 이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상담소에 들어오는 쌀.내복.라면 등으로는 그들의 허기만 메워주고 매서운 겨울바람만 막아줄 뿐"이라면서 "그들이 똑바른 사회인으로 서기 위해서는 사회의 지속적인 지원과 동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교회가 소외된 이들을 도우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신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왜 도우느냐','3D업종에 투입하면 된다'는 얘기를 하면서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교회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성경 말씀에 따라 사랑을 앞장서서 실천하는 것이라 봅니다".

그는 "올 한해는 대구역 부근 쪽방생활자에 대한 실태파악을 겨우 마쳤을 정도로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면서 "내년부터 본격적인 생활.직업교육 등을 통해 그들의 자활의지를 높일 계획"이라고 의욕을 내비쳤다.

그는 또 "쪽방생활자들이 겨울철을 따뜻하게 날수 있도록 시민들이 생필품을 기부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빠트리지 않았다. 한 목사는 자주 쪽방생활자의 손을 붙잡고 함께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이들을 항상 건강하도록 지켜주시고, 사회와 이웃을 원망하지 않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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