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사곡면 화전2리는 산수유, 사곡감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그러나 그 못잖게 이 마을을 특징지우는 것은 계절마다 화려한 옷을 갈아입는 변신의 마을이란 점. 봄에는 노란 물감을 들인 듯 마을 전체가 산수유 꽃으로, 여름에는 초록색으로, 가을에는 붉은 산수유 열매와 주홍 감 물결로 마을이 뒤덮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이 마을을 인근에선 '숲실'이라 부른다. 마을 주민들 또한 '화전2리' 보다는 숲실로 불리길 원한다.
전체 주민이래야 38가구 90여명이 전부. 다른 마을들처럼 노인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마늘.벼 농사 외에 산수유.감 등 농외 소득만도 연간 수천만원에 이른다. 때문에 진작부터 '부자마을'로 인식이 잡혔다.
며칠 전 오후 시간 기자가 찾았을 때 숲실마을의 2m 남짓한 진입도로 옆 산등성이에는 군데군데 눈이 쌓여 있었고, 300년도 더 됐을 듯한 산수유나무들이 군대 열병이라도 하듯 길게 늘어서서 손님을 맞고 있었다. 마을을 뒤덮은 산수유는 어림잡아도 8천 그루는 넘는다고 안내자가 귀띔했다.
마을 안 주택들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하나둘 피어 올라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집집마다 넓잖은 마당에 붉은 산수유 열매가 가득 널려 있었고, 이장 집을 찾았을 때도 이 마을의 산 증인이자 이장의 어머니인 김한예(87) 할머니가 마당에 널린 산수유를 손질하고 있었다.
숲실에서 가장 연장자인 김 할머니는 "늙은 할망구는 찍어서 뭐 할라꼬, 젊은 사람을 찍어야 잘 나오제..." 하면서도 기자의 사진 촬영을 마다하지 않은 뒤 산수유 이야기에 신명을 냈다. 병풍처럼 둘러 선 앞산을 가리키며 "저 산 산수유나무는 60년 전 시집 왔을 때도 그대로 있었다"며, 김 할머니는 "정확히 모르긴 해도 아마 30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나중에 김준대(58) 이장으로부터 들은 바로는, 이 마을이 작년 한햇해동안 산수유에서 얻은 소득은 무려 3억8천만원에 달했고 가구당 소득도 1천만원을 넘었다. 산수유가 이 마을의 효자요 마을을 부자로 만든 공신이라는 것.
그런 한편 마침 마을에서는 사곡감 작목반 총회가 열려 있다고 해서 발길을 옮겼다. '사곡감'이란 군 농업기술센터가 숲실감을 브랜드화한 것. 씨가 없고 맛이 독특하다 해서 조선시대 진상품이었을 정도로 유명하기도 한 특산품이다.
숲실 마을에는 이 감나무가 산수유나무만큼 많아, 최근에 심은 3천 그루를 포함해 모두 4천여 그루나 되고 거기서 연간 40t이나 감을 생산하고 있다. 상주.청도에 이어 전국적으로 유명한 또 하나의 감 생산단지를 이루고 있는 것.
김창대(60) 작목반장 집에서 감 출하를 앞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던 20여명 회원들은 기자가 들어서자 모두 일어나 반긴 뒤 푸짐한 음식을 차려 내놔 넉넉한 시골 인심을 다시 한번 체감케 했다. 한 회원은 "오늘 총회를 위해 큼지막한 돼지를 한 마리 잡았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총회는 출하기 가격과 내년 감 농사 방향을 놓고 일년에 한번씩 여는 것.
막걸리가 한 순배 돌자 한 회원은 "이제 감 값을 정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며 회의를 재촉했고, 결국 올해 감 출하가는 10kg 상자당 상품 1만2천원, 중품 8천원, 하품 3천원으로 결정됐다. 홍수 출하 자제도 덩달아 다짐됐다.
김 작목반장은 "작년엔 상자당 1만5천원에 냈지만 올해는 감귤 값이 폭락해 감 값도 조금 내렸다"며, "사곡감 명성이 전국에 자자해지고 있고 신기술 도입으로 생산량이 매년 크게 증가해 머잖아 전국 감 시장을 석권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에 값이 조금 내린다고 실망할 것은 아니다"고 했다.
황영록(45) 총무는 "사곡감은 첫서리가 내린 뒤에야 따는 게 특징이고 큰 물통에 넣어 비닐로 밀봉한 뒤 저온창고에 넣어 뒀다가 12월 말이나 1, 2월에 일제히 출하한다"고 숙성 비법의 설명을 거들었다. 또 김준대(58) 이장은 "산수유와 마찬가지로 이 숲실마을 감나무 역사 또한 수백년 이상 되는 것으로만 짐작할 뿐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없지만, 조상들이 먼 훗날의 후손들을 위해 산수유와 감나무를 마을 곳곳에 많이 심어 놓은 것만은 틀림 없다"고 했다.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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