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조흥은행 수송 현금 탈취사건은 범행에서나 수사에서 뛰어난 한편의 추리소설을 방불케 했다. 완전범죄를 지향했던 범인들의 치밀한 준비와 마무리, 전국적 공조망을 만들어 그 음모를 뚫어 낸 경찰, 시민들의 신고 정신, 은행들의 엉성한 자기 관리 등 면면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다.
◇완전범죄를 노리다=경찰 조사에 따르면, 울산에 사는 범인들은 범행 두달 전부터 조흥은행 경주지점을 철저히 답사해 △출장소에서 입금을 마감하는 동시에 지점으로 현금을 수송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수송 경로.방법.시간대 △범행 지점 신호체계 등을 치밀히 분석해 탈취 계획을 세웠다.
범행 하루 전에는 경주 용강동에서 범행에 쓸 오토바이를 훔쳐 두고 각자의 역할을 나눠 맡았다. 범행 2시간 전에는 범행 때 쉽게 열 수 있도록 수송차의 트렁크 자물쇠를 조작해 놨다.범행 시간에 맞춰 이들은 자신들의 알리바이까지 조작하려 시도했다.
그 시간대에 범인 중 1명이 멀쩡히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음으로써 CCTV에 사진이 촬영되도록 하고, 자신들의 휴대폰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그 시간에 통화토록 한 것.이런 준비를 갖춘 뒤에야 이들은 지난달 18일 오후 5시35분쯤 은행 출장소에서부터 오토바이로 미행하다 수송차가 네거리 신호에 걸리자 순식간에 현금 3천100만원과 수표 등 1억5천만원이 든 가방을 탈취해 모습을 감췄다.
◇마무리도 철저=이들 셋은 훔친 현금 3천100만원을 1천만원씩 똑같이 나눈 뒤, 당장은 사용이 곤란한 3천만원 어치의 수입인지.증지를 나중에 쓰기 위해 범인 집 마당에 시멘트로 밀봉해 파묻었다. 또 자기앞수표 1억2천만원은 돌과 함께 가방에 넣어 울산 방어진 앞바다에 빠뜨렸다. 경찰은 이런 증거물들을 찾아 냄으로써 이들의 범죄를 입증했다.
하지만 이들의 치밀성은 이 정도에서 그친 것도 아니었다. 배신을 막으려 한듯 부산에서 훔친 현금도 3천만원씩 나누는 등 공동분배 원칙을 철저히 지켰고, 한번 범행한 후에는 보통 일년씩 태연히 생업에 종사함으로써 경찰의 의심을 피하는 방법또한 동원했다.완전범죄를 노려 공부도 상당히 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에서 발생한 각종 특이 강절도 사건의 법정공방을 보도한 신문기사들을스크랩해 밑줄까지 그어가며 숙지했고, 범행 발각 뒤의 대처법까지도 철저히 익혔다는 것. 이런 사실은 범죄 관련 기사 등 모음집 1권, 나리양 유괴살인 사건 등의 무죄판결 관련 자료 모음집 등이 압수돼 밝혀졌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범인 중 1명은 1997년 8월 충북 옥천에서 발생했던 농협 현금수송 차량 탈취사건 용의자로 검거됐다가 11개월만에 대법원 무죄 판결로 풀려나기도 했다. 하지만 경주 사건을 수사 중인 경북경찰은 현금 수송자를 알루미늄 방망이로 때린 뒤 2억2천120만원을 탈취했던 그 사건 역시 이들의 소행이라는 증거를 확보 중이라고 밝혔다.
그외 이들은 2년 전부터 10차례에 걸쳐 7억6천여만원의 금품을 훔쳐 온 것으로 이번 수사에서 확인됐다. 2000년 2월 1일엔 부산 대현1동에서 한빛은행 현금 수송차 트렁크를 열어 3억6천만원 상당을 탈취했고, 1999년 11월엔 한빛은행 부산 초량지점 현금 수송차를 털려다 다른 일로 우연히 출동한 경찰관 때문에 실패했다. 가정집 절도를 위해서는 제주도까지 원정갔을 정도이며,2000년 9월엔 대구 효목동 가정집에서 900만원을 훔치기도 했다.
◇완전범죄를 뚫은 경찰=경주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경주서.경북청.기동수사대는 물론 서울경찰청에서 2명의 전문수사 인력을 지원받아 39명의 합동 기동수사반을 편성했다.
수사반은 목격자 찾기와 용의자 선별작업을 병행하면서 부산 수송차 현금 탈취 사건 등 유사한 사건도 동일범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부산남부서.옥천서 등에서 사건기록을 넘겨 받았다. 또 서울청 비디오 테이프와 정보원 진술 및 회수한 수표 등을토대로 범죄분석에 들어 가 붙잡힌 3명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어 이들을 미행해 증거를 포착할 단계가 되자 경찰은 수사관들을 울산에 잠복시켜 휴대용 비디오로 이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촬영했다. 또 범인 중 포장마차를 하는 1명에게 여성경찰관 2명을 접근시켜 지문을 따 냈으나, 이 과정에서 여경들이 시간을 끄느라 떡뽁이를 너무 많이 먹다 배탈을 일으키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작업과 함께 경찰은 범인들 친인척 및 내연의 여자 등 주변 인물 40명의 통화.계좌 추적, 비디오 촬영 등을 끈질기게 해 나감으로써 범인들의 알리바이가 거짓임을 밝혀내게 됐고, 그때문에 뒤늦게 범인이 자백까지 하게 됐다.
◇범인들=울산에 사는 최모.김모.윤모씨 등 범인 3명은 35살 동갑으로 10년 전 교도소에서 서로 알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그 중 김씨는 열쇠업, 최씨는 주차장을 운영했으며, 결혼은 않았지만 미모의 여인들과 함께 살아 온 것으로 밝혀졌다.이번 사건 수사에 참가한 경북경찰청 전종석 강력계장은 "이번 사건은 시민 신고와 경찰 공조수사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고 평가했다.
경주.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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