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꾼 최수혜(27)씨. 그녀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무용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엔 별수없이 철학도들 사이에 서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늘 무대를 향해 고정돼 있었다.
졸업후 최씨는 결국 춤꾼이 되고 말았다. 부모님도 더 이상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최씨는 경동정보대학 평생교육원의 댄스 스포츠 강사다.
주부들을 대상으로 라틴 댄스를 가르친다. 그녀는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또한 배우는 사람이기도 하다. 매일 두류동의 춤학원을 찾아 새 기술을 연마한다. 일요일인 20일엔 대구시민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댄스 스포츠 3종목' 대회에 선수로 출전했다.
최씨는 하루 10시간 이상 춤을 춘다. 라틴 댄스라 파트너가 필요하지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그녀는 쉬지 않고 춤춘다.
이른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태엽을 감아 놓은 인형인들 그처럼 출 수 있을까. 몸은 파김치가 되기 일쑤지만 마음은 소금기 없이 파릇파릇하기만 하다.
"다른 일은 재미도 없고 능률도 오르지 않지만 춤은 달라요. 평생 춤추며 살고 싶어요". 그녀는 유난히 반짝이는 눈으로 말한다.
최씨의 춤사랑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됐다. 완고한 집안의 며느리였던 어머니는 밤을 기다려 창호지 문에 담요를 잇대어 걸치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최씨를 임신한 상태에서도 어머니는 춤을 멈추지 않았다고.
그때문일까. 최수혜씨는 4세 때부터 텔레비전 백댄서의 춤을 익혔고 운동회 때마다 무대를 점령했다. 누군가 억지로 그녀를 끌어내리지 않는 한 그녀는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중고등학생 시절엔 무용학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실내를 기웃거렸다.
유리창 너머 아이들의 율동을 바라보며 참 많이 훌쩍였다. 춤 동아리가 없던 대학(영남대)에서는 합창단에서 4년을 보냈다. 동료 선후배들이 토익과 토플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노래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셈이다.
그녀에게 춤은 연인이다. 춤 때문에 가슴 아프고 춤 때문에 짜증이 난다. 그리고 그 춤으로 인해 행복하다. 곁에 손을 잡아 줄 누군가가 없어도 든든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156cm, 47kg의 가냘픈 몸. 최씨는 자신이 춤추기에 알맞은 신체조건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괜찮다. 자신은 뛰어난 몸매 대신 재능과 열정을 가졌다. 그 사실에 만족하고 감사한다.
"10년 뒤의 제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수고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한때 춤에 미친 적이 있었노라고, 그렇고 그런 푸념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거든요". 최수혜씨는 지금은 죽을 힘을 다해 배워야 할 때라고 단언한다.
아무리 연습해도 고쳐지지 않는 몸 동작을 보면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싶다고 말하는 최수혜씨. 그러나 그녀는 우아한 자태로 헤엄치기 위해 백조의 두 발이 어떤 수고를 감내하는 지 잘 아는 사람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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