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카멜리아의 여인' 강수진

각종 게이트로 이 나라 상층부의 추악한 이면이 연일 폭로되면서 국민들은 이제 분노를 넘어 허탈하다 못해 무감각과 자포자기의 심리적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 작금의 이나라 현실이다.

DJ의 '1.29' 개각은 이런 답답한 국민의 마음에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 것이나 진배 없다. 국내 사정을 돌아보면 마지막 비상구라도 나타나야 하는데 어디에도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은 군산의 유흥가 화재로 억울하게 참사를 입은 희생자들의 마지막 절박한 심정과 같은데 희망의 출구는 닫혀있다.

이런 시점에 3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카멜리아의 여인' 공연은 강수진(35)이라는 세계적인 프리마 발레리나의 진정한 예술혼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발레 팬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여주기에 족했다.

선화예고 1학년때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 유학한 그녀는 85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1위에 입상했고 99년 '카멜리아의 여인'의 마그리트 역으로 '발레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우수 여성무용수상을 받아 세계 정상의 발레리나로 우뚝 섰다.

그녀가 세계적인 프리마 발레리나로 도약한 것은 우연이 아니고 피맺힌 노력의 결과였다. 2000년 국내 TV프로그램을 통해 비춰진 강수진의 발은 발가락 마디마디에 굳은 살이 박혀 나무와 같았고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의 명성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였다.

부정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이 땅의 소위 잘 나가는 지도층 인사들이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우리는 그런 점에서 예술 분야에서 한국을 빛내고 있는 월드스타들에서 더 없는 뿌듯함과 희망을 추스른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그러했고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첼리스트 장한나, 소프라노 조수미, 신영옥, 홍혜경이 그 이름이다.

무용 부문에서는 강수진에 앞서 이미 1930년대에 '한국의 이사도라 덩컨'으로 불리는 최승희가 있었다. 그녀는 34년부터 39년까지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각 국을 돌면서 '동양의 진주'로 극찬을 받았다.

그녀의 명성은 최근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그녀의 그림, 세기적 영화배우 로버트 테일러가 보낸 연서(戀書)가 확인된 데서도 드러난다. 강수진이 '제2의 최승희'로 세계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해 한국인에게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는 하나의 아름다운 '강철나비(Iron Butterfly)'의 표상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신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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