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슬람 탐방(5)-오아시스 도시 파이윰

교통체증으로 거북처럼 설설 기던 버스는 카이로를 벗어나자마자 쏜살같이 사막을 가로질러 달린다. 차창 밖으로는 끝없는 모래땅이 지나친다. 겨울이라지만 사막의 햇살은 여전히 따갑다.

버스 안에서는 코란의독경방송이 커다랗게 울리면서 마치 모스크(이슬람교 사원)같은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감히 코란의 방송소리를 낮추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승객들은 대부분 잠을 청하는 눈치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마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대지의 색깔이 갑자기 푸르러졌다.황량한 사막을 지나왔다는 기억은 순식간에 희미해지고 천지를 뒤덮은 푸르름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빽빽하게 들어선 키 큰 야자수들은 허름하게 진흙으로 지어진 농가들과 어우러져 정겨움을 더해주고 있다. 곳곳에서 풀을 뜯고 있는 당나귀들과 살찐 소들은 이곳의 풍요로움을 말해주는 듯하다.

'파이윰'이 가까워지면서 더이상 버스에 머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갈증이 났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정류장 부근의 약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과연 이곳이 정말로 '오아시스'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젊은 약사 아흐멧은 "눈에들어오는 곳은 다 오아시스"라고 하면서 필자의 낭만적인 오아시스의 그림을 깨뜨렸다. 엽서에서나 보던 작고 한적한그런 오아시스가 아니었다.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뻗어있는 오아시스 '파이윰'은 거대한 도시와 주위의 촌락들로 이루어져있다. 오아시스의 진원지인 '물'이 있는 곳을 묻자 이집트인들은 '파노라마'로 가라고 한다.

이집트의시골지역에서는 미니버스나 짐칸을 승객용으로 개조한 픽업이 주요 대중교통수단이다. 픽업은 야자수 숲과 들판을 가로지르면서 전형적인 이집트의 시골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촌부와 아낙네들이 팔고 남은 채소꾸러미들과 장바구니를좁은 공간으로 밀어넣는 바람에 픽업은 완전히 만원이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불평 한 마디 없이 잘 참아내고 있다.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알라신의 뜻'이다. '알라신이 삶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체'라고 믿는 이집트인들의 신앙심은 이방인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한마디로 경이로울 뿐이다.

픽업운전수가 차를 세운 곳은 '파노라마 호텔' 정문 앞이었다. 필자는 언덕이나 마을이름을 파노라마라고생각해왔으나 이집트인들은 외국인들이 가는 호텔을 연상한 것이다. 친절한 픽업운전수는 '샥슉'이라는 마을로 다시 차를 돌렸다. 호숫가를 중심으로 발달한 작은 마을이며 주업은 농업과 어업.

이 호수가 바로 파이윰 오아시스의 생명의 원천이다.호수는 바다에 버금갈 정도로 끝이 없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농촌이면서 어촌인 마을, 샥슉. 필자가 픽업에서 내리자마자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신발조차 신지않은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당나귀를 모는 아이,마차에 잔뜩 채소를 싣고 가는 농부, 생선 몇 마리를 팔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있는 노인들, 곁눈질하면서 걸어가는 시골아낙네들…. 잠시 후 이 마을의 영어교사인 페릿 압둘라(24세)가 달려왔다. 그가 안내한 곳은 장터이다.

우리나라의 시골장터처럼 길바닥에 채소나 계란 등을 펼쳐놓고 앉아있는 아낙네들, 과일로 채워진 리어카를 지키는 촌부들, 엿판을 놓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엿장수….

사실 온 마을사람들이 장터에 모였다고 할 정도이다. 특별히 뭘 사고 팔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시골장에서 시간을 보내려 온 사람들도 많았다. 장터에서는 서른명 이상의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나중에는 어른들까지 합세했다. 호기심으로 모여든 인파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무 이유도 없이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해 처음으로 느껴지는 두려움. 이들을 향해 카메라 플래시를 몇 번인가 더 터뜨리면서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었다.

페릿은 날카로운 교사 특유의 음성으로 아이들에게 흩어질 것을 명령하고는 슬그머니 필자를 잡아당기면서 빠져나갈 것을 권유했다. 필자는 태연한 척 군중들을 헤집고 나왔고 이들에게서 완전히 멀어진 후에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페릿의 가족들 중 아버지는 호수에서 잡은 생선들을 팔기 위해 하루 종일 집 밖에서 어물전을 지키고 다른 가족들은 모두 들판에서 일한다. 취재당시가 라마단(이슬람 금식 성월)기간이었는데 해가 지면서 모두들 긴 라마단의 하루를 끝내고 '오후 5시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은 바쁘기만 했다.

하루종일 굶었던 필자도 페릿의 가족들의 식사에 함께 했다.손으로 먹는 음식은 한층 입맛을 돋우었다. 호수에서 잡은 생선들과 채소, 토마토샐러드, 빵이 전부인 간단한 상차림이었다.

"이전에는 하루 세 끼를 걱정해야 될 정도로 가난했지만 알라신의 축복으로 이제는 끼니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짧은 한 마디로 페릿의 아버지는 사막 속 오아시스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일생을 표현했다.

하영식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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