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한 한국인에 짓밟힌 '코리안 드림'

"만나면 죽이고 싶어요. 한국은 이제 기억하기조차 싫은 나랍니다". 필리핀 산업연수생 ㅈ(26.여)씨와 ㅇ(27.여)씨는 온몸을 떨며 울부짖었다. 이들은 지난 2일 밤 자신이 근무하는 ㅇ 섬유공장(대구시 달서구 월성동)내 기숙소에서 흉기를 든 3명의 남자로부터 끔찍한 짓을 당하고 현금 11만원을 빼앗겼다.

오전8시30분부터 시작해 이날 밤9시까지 야근을 한 이들은 샤워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는 순간 당했다. 죽기살기로 저항했지만 밤10시가 넘은 공장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의 충격 때문에 숙소를 옮긴 두 사람은 "하루속히 2년의 연수기간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고 있는데..."하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에 온 외국인근로자들이 '추한 한국인'때문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임금차별, 성추행, 폭행,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에 시달리면서도 한국정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불법체류자들은 해고와 강제출국을 두려워해 제대로 피해구제를 호소조차 못하며 한국사회에 대한 증오심만 키우고 있는 처지다.

대구성서공단내 한 영세업체에서 일한 인도네시아인 ㅇ(27.여)씨는 지난 12월 몸을 더듬으며 '여관에 가자'는 업주로부터 2, 3일간 성추행을 당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다가 나중에 업주의 흑심을 알고나서 다른 외국인근로자와 함께 공장을 나와 버렸다. 불법체류자라는 약점 때문에 당국에 신고도 하지 못했다.

베트남인 ㅇ씨도 야간업무 뒤 뒤따라온 작업반장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대구에서 일하던 남편과 동료들에게 알려질 것이 두려워 종적을 감췄다.

스리랑카인 ㅅ(27)씨는 지난 12월 경산의 한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물건이 자꾸 없어진다며 의심하는 주인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는 결백을 주장하며 외국인노동자상담소에 신고했지만 불법체류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사과를 받는 선에서 물러났다.

지난 12월 불법체류자 자진출국기간에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스리랑카인 ㄱ(35)씨는 그동안 업주가 강제로 적립한 430만원을 찾으러 은행에 갔으나 이미 업체에서 빼내 쓴 뒤였다. 자신의 이름으로 든 적금을 다른 사람이 찾아 갈 수 있냐며 은행측에 따졌지만 '업체가 부도나면서 공장 관계자가 돈을 인출해 갔다'는 답변만 들었다. ㄱ씨는 "한국인이었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올초 한 필리핀 여성은 유산으로 병원에서 태아분리수술을 받던 중 숨졌지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싸늘한 주검으로 한국을 떠났다. 주변 사람들은 "한국인이었다면 경찰도 병원도 아무런 대책없이 이렇게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대구외국인노동자 상담소에 따르면 성폭행 상담은 연간 4,5회, 폭행은 20여건에 이르고, 임금체불은 한달에 40건을 넘고 있다.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 김경태 소장은 "현재 외국인근로자들은 법적, 제도적으로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등 '반노예'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며 "고용허가제 및 취업비자 발급 등 외국인근로자들의 인권보장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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