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경제상품 문화(7)-영국 노팅힐 카니발

런던 외곽의 아담하고 조용한 지역 노팅힐(Notting Hill)은 일년에 한번씩 완전히 색깔을 바꾼다. 할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와 영국 배우 휴 그랜트가 아름다운 로멘스를 보여준 영화 노팅힐의 배경도시로도 유명한 이곳에서는 매년 8월 마지막 월요일인 뱅크 홀리데이에 멋진 카니발이 열린다.

보통 200만명의 인파가 몰려든 가운데 마차 행렬이 거리를 누비는데, 이때 시민들은 음식과 음료비 그리고 호루라기나 야광 머리띠 등 파티용 물품 구입에만 한사람당 평균 30만원 안팎(15~16파운드)의 돈을 소비할 정도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에 걸친 노팅힐 카니발 행사에는 약 50만파운드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중 4분의 3 가량은 스폰서들의 지원금으로 충당한다. 왕립 해군을 비롯한 국가 공공기관들도 행진마차 등 축제에 도움이 되는 장비를 지원한다.

런던 관광국에 따르면 지난해 축제기간 런던을 찾은 해외 관광객 중 30% 가량이 미국인들이었다며 관광객 한사람당 하루평균 71파운드를 쓴 것으로 집계했다. 노팅힐 카니발로 올리는 관광수입이 어느정도인지 알 만하다.

이 카니발은 1965년 런던에서 이주해 살던 서인도제도 출신 노동자 수백명이 자신들이 거주하는 동네 노팅힐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적이나 인종 구별없는 모든 노동자 계급의 결속 축제였다 그러나 100만명 이상의 참관자를 동원하는 대카니발로 발전하면서 서인도 출신 일색의 축제로 변했다.

이는 60년대말 불경기의 여파로 노동자들간의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인도 출신 노동운동가들이 자신들만의 결속과 문화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카니발을 기획하고 조직을 독점해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은 모국인 트리니다드(Trinidad)의 전통적 카니발을 재현했다. 피식민지 이주민의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분노와 저항을 표현하며 조상들의 전설적인 구세주를 앞세워 구원을 받고자 하는 이색적인 민족축제인 것이다.

카니발의 가장 독특한 요소는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악기 연주와 레게 음악, 춤 그리고 기상천외한 가장행렬이다. 과거 식민정부가 악기 사용을 못하게 하자 원주민들은 오일 드럼통과 뚜껑을 오려서 각각 특유의 음색과 음정을 내는 악기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트리니다드 특유의 발명품인 타악기 스틸밴드(Steelband)이다.하찮은 드럼통을 두드려서 노래하고 춤추지만 여기에는 핍박받고 소외된 그들의 힘이 식민 모국인 영국과 서구 문명을 지배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한다. 노팅힐 카니발은 1970년대 후반까지는 주로 트리니다드의 전통 카니발이었다.

그런데 점차 자메이카 특유의 레게 음악과 민간종교가 결합되는 등 서인도제도의 다른 지역 문화요소가 가미되면서 지금은 전세계 흑인들의 민속음악과 춤이 어울린 총천연색의 감각적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다.

이는 피식민지 하층 이민들의 내면에 깃든 슬픔과 외로움.분노.저항.도전.자존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의 몸짓이며 소리이다. 착취와 지배와 소외의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인간적인 지위를 추구하는 정치운동의 대중 문화적 표현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팅힐이 오늘날 세계적인 카니발로 발전한 것은 이같은 민족주의와 정치운동의 한계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서인도제도 출신의 후예들이 잃어버린 전설을 서구 문명의 한복판에서 재현하는 노팅힐 카니발. 이 축제는 스스로를 소수집단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의 자부심과 흥겨움이 어우러진 축제여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노팅힐에서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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