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설밑 나들이 시골장 어때요

입춘이 지나서일까. 며칠새 날씨가 포근한 데다 민족 최대명절 설날(12일)과 정월 대보름(26일)을 앞둔 시골장에서부터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시골장 어느 곳이든지 활짝 피어나는 봄처럼 활력이 넘친다.

어물, 과일 등 제수용품에서 겨울추위를 이겨낸 나물과 온갖 잡동사니도 시장 한 켠 좌판을 차지한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대형 유통매장이 지방에까지 파고들어 위세를 얻고 있지만 그래도 명절엔 시골 대목장이 제격. 닷새마다 한번씩 서는 시골 5일장은 변함없이 찾아 주는 지역민들에다 인근 도시에서 일부러 찾는 사람들로 흥겨움까지 배어있다.

설설 끓는 커다란 가마솥에서 막 퍼담은 해장국에는 김이 슬슬 피어오르고 막걸리 사발을 나누는 촌로의 수염에는 온갖 게이트로 얼룩진 나랏일보다 시집간 딸 소식이 더 궁금하다. 이런 시골 장터를 돌다보면 눈과 코, 귀, 입은 두루 즐겁기만 하다.

지난 가을 거둬 갈무리해놓았던 참깨나 콩을 됫박으로 싸가지고 나온 할아버지, 양지쪽에서 햇나물을 뜯어 온 할머니에게는 깎아달라고 떼쓰기보다 옛정취를 흠씬 얻어 온다.

해가 짧은 겨울장은 느지막이 서고 해거름이 오기 전 일찍 끝난다. 구수한 사투리로 온종일 흥정이 오가던 시끌벅적함은 대개 정오무렵이면 파장분위기. 조금 서둘러 여유있게, 장보기를 겸해 가족과 함께 떠나면 그 설렘 또한 생활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영천장(2, 7일)=재래시장 중에서는 대구인근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다. 그래서인지 볼거리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다. 시골장의 오밀조밀함보다는 도회의 저잣거리 같은 풍성함이 넘친다.

영천장은 완산동 일대인데 도심을 가로 지르는 금호강의 남쪽 전체가 시장인 셈이다. 지난 55년에 개설된 영천장은 인근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집산지. 대구지역 등지로부터 가까워 자가용 장보기가 편리한 곳이다.

장바닥에는 농산물과 토산품이 널려 있다. 시세보다 싸게 사는 재미도 그만이지만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귀한 물건을 구경하는데 묘미를 두는 사람들도 많다. 눈요기만으로 대충 둘러봐도 2시간은 잡아야 한다. 이리 저리 둘러 보다가 사과, 나물, 꿀 등 지역특산품을 잘 흥정해 싼값에 사는 것은 덤이다. 마늘, 고추 등 양념류 거래도 많다.

▨의성(2, 7일).안계(1, 6일)장=머리에, 손에 짐보따리를 이고 진 아낙들이 보이면 오늘은 장이 서는 날임을 알 수 있다. 대구에서는 맛볼 수 없는 향기 짙은 나물과 오곡, 인근 군위 등지에서 농민들이 직접 갖고 나오는 콩, 팥 등 농산물과 사과, 배 등 과일, 설 차례상을 위한 돔배기 등이 특히 많다.

물론 규모는 대구 큰 장에 비할 수 없지만 종류는 다양하다. 닭발을 뼈를 제거하고 다져 양념구이한 안주에다 막걸리를 곁들일 수 있다. 의성마늘은 중간상들이 제일로 쳐주는데 본격 마늘 출하기인 6월말에서 9월까지는 전국에서 상인들이 몰려 든다.

안계장은 길게 뻗은 장안을 훑어 가다보면 아직도 옛 시골장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껴볼 수 있는 곳. 나물을 다듬고 또한 보기 좋게 고르는 좌판 할머니의 손놀림이 바쁘다. 어물전, 나물전, 곡물전 등에선 왁자한 흥정이 시골장 분위를 돋운다.

값도 값이지만 되가 다른 곳보다 실하므로 여러모로 실속이 많다. 시장내 국밥집이나 김치를 얹어 먹는 칼국수 한그릇도 빠질 수 없는 여정에 속한다.

▨청도(4, 9일).풍각(1, 6일)장=대구에서 팔조령 터널을 지나 두루두루 구경하면서 가도 1시간이면 넉넉한 청도장. 한겨울이라 복숭아향 진동하는 달콤한 여름장의 분위기는 기대할 수 없지만 대신 물좋은 제수감이 많다.

청도에서는 청도장과 풍각장이 그런대로 장 규모가 튼실한 편이다. 토질이 비옥해 쌀, 찹쌀은 특히 미질이 좋고 따라서 밥맛이 좋다며 상인들은 권한다. 고사리와 도라지도 빠뜨릴 수 없는 품목. 시장 초입 난전에는 여느 장에서 보기 힘든 약초나 한약재가 눈에 많이 띈다.

▨감포장(3, 8일)=천년 고도 경주의 향기에 젖을 수도 있고, 감포 앞바다의 싱싱한 횟감을 맛볼 수도 있어 두어시간 여정이 고달프지 않다. 바다와 만나는 곳인 만큼 계절에 관계없이 각종 수산물과 활어회가 눈길을 끈다. 읍내 감포리 일반 시장과 여기서 100여m 떨어진 횟장으로 나뉜다.

역시 최고상품은 멸치젓과 돌미역. 동해 청정해역에서 잡힌 멸치를 전통비법으로 담근 멸치젓은 그 명성이 자자하다. 돌미역은 양식미역과 달리 은은한 맛이 톡특하다. 인근 횟장은 상설화된 시장으로 언제든 싱싱한 횟감을 살 수 있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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