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57학번 할아버지 45년만에 '학사모'

대학 입학 후 45년만에 꿈에 그리던 학사모를 쓰게 된 오재천(대구 동구 신천동)씨. 올해 72세인 오씨는 22일 영남대에서 법학사 학위를 받게 된다.

1957년 가정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학 공부를 중단한 뒤 42년만에 복학, 그리고 마침내 쓰게 된 학사모. 자녀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묵묵히 주경야독했던 지난 3년간 고생에 대한 보답이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버스를 갈아타며 강의실을 찾았다.

수업을 마치면 밤 10시15분. 행여 막차를 놓칠새라 버스정류장까지 10분 가량을 달음박칠을 쳐야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이 없었다.

"칠십 노인에게 뜀박질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늦게나마 제가 하고픈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힘을 실어줬죠.

작년 겨울 마지막 시험을 치른 뒤 자식들을 불러 공부를 마쳤다는 얘기를 전했습니다. 모두 눈이 휘둥그레 지더군요. 영남대를 나온 며느리가 '아버님이 졸업 후배가 되네요'라고 말해 한바탕 웃었습니다"

해방되던 해, 초교를 졸업한 오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3년간 독학으로 한의서를 공부했다. 정규교육을 마쳐야겠다는 생각에 안동사범학교에 진학했고 초교 교사로 부임한 때가 1956년.

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비애를 절감한 오씨는 이듬해 당시 청구대(현 영남대) 법학부 야간과정에 입학했다. 그러나 교사 월급으로 부모와 동생들 뒷바라지도 벅찬 터라 대학공부는 너무나 힘들었다.

결국 1년 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교직도 그만둔 채 한의학 공부에 매달렸다. 3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동광한약방'이 평생의 업이라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못다한 공부에 맺힌 한은 두고두고 오씨를 괴롭혔다. 건강을 해친다며 만류하던 아내를 설득해 결국 1999년 2학년에 복학했다.

헌법을 가르쳤던 영남대 법학부 박인수 교수는 "단 한번 결석도 없이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진지하게 수업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장학금을 받을 만큼 열성적이어서 강의 준비도 조심스러웠고, 수업 분위기도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배움에는 시기가 있다는 말을 새삼 절감했죠. 그러나 수업을 일찍 마친 날 젊은 친구들과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먹던 추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씨는 영남대 행정대학원 법무행정과에 입학해 석사학위에 도전할 계획을 갖고 있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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