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그림은 왜 비쌀까(상)

지역의 40대 초반 문인화가의 경험담. 얼마전 그는 고교 동기회에 아무런 재정적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신의 실력을 한껏 발휘, 작품 2점을 기증했다.

근데 그의 작품을 받아든 동기회 임원들은 얼마에 팔아야 할 지 한순간 고민(?)에 빠졌다. 임원들은5만∼10만원쯤이면 충분하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뒤, 통과의례로 전문가에게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웬걸, 전문가는 점당 70, 80만원선이면 괜찮다는 조언을 했다. 그러자 그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무슨 그림이 이렇게 비쌀까?"

미술품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림값이 무척 비싸 보인다. 종이에 먹으로 몇번 쭉쭉 그어놓았을 뿐, 별다른 제작비용이 투입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술품은 공산품이 아니라 정신의 산물이다. 고도의 정신적 창작물이라면 무조건 비쌀 수밖에 없는게 요즘의 판단준거가 아닌가.

상점이나 은행 등에서 파는 이발소 그림과 유명 작가의 풍경.정물화는 얼핏 보기에 비슷해 보이는데도(실제로 상당히 다르다) 가격면에서 수십, 수백배의 차이를 보인다. 제작과정 한가지만 봐도 몇명이 역할을 나눠 마구 찍어내는 이발소 그림과 낮밤을 고민한 작가의 정열이 배어있는 창작물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한 40대 중반 작가의 얘기. "화가생활을 시작하면서 제일 감명받은 것이 피카소의 일화였죠. 그가 말년에 그림 2점을 주고 스페인의 해안가 별장과 맞바꿨다는 겁니다. 모름지기 그림을 시작했으면 그런화가가 돼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노력했습니다. 물론 실현 불가능한 목표지만…".

멀리 외국은 따질 것도 없고 국내에서 제일 비싼 작가는 박수근(1914~65)으로 꼽힌다. 지난해 9월 서울의 한 경매에서 그의 3호짜리 작품 '앉아있는 여인'이 4억6천만원(호당 1억5여천만원)에 팔렸다니, 서민의입장에서 보면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그런데도 이중섭 이인성 나혜석 등 몇몇 작고 작가의 작품은 매물이 없어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고급 컬렉터들의 좋은 그림에 대한 소장 욕구에다 작품이 장차 확보하게 될 금전적 가치에 대한 보장이 맞물린 결과일 것이다.

지난해초 대구에서 벌어진 해프닝. 이인성의 4호짜리 정물화 판매를 위탁받은 한 중간상은 지역의 한 애호가에게 3천만원에 팔았다. 너무 쉽게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서양화 시세에 어두웠던 중간상이 호당 3천만원을 점당 3천만원으로 착각한 것이다.

서울의 원소유주에게 판매대금 독촉을 받던 중간상은 구입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기에이르렀고, 결국 위약금을 주고 작품을 돌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가의 그림값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가 빚어낸 일화가 아닐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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