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슬람 탐방(9)-서구인이 본 이집트 문화

카이로시내는 교통체증이 높기로도 유명하지만 보행자들에게는 '교통지옥'이다. 이유는 대부분의 도로에서 보행자들이 전혀 길을 건널 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아예 횡단보도나 신호등 자체가 없다. 어쨌든 위험하게 도로를 건너다니는 카이로시민들의 모습은 일상적이다. 한 번은 필자도 도로를 건너가기 위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기회도 가질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차들이 도로를 고속으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도로를 건넌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였다. 한참을 머뭇거리고 있을 때 앞에 이집트청년 한 명이 길을 건너가고 있었다. 그러고나서는 길 건너편에서 필자를 유심히 쳐다봤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더니 아주 유연하게 자신이 건넜던 길을 되돌아왔다.

순전히 나를 위하여 한 청년이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도로를 건너왔다. 다 건너온 이집트청년은 마치 학부모가 초등학생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네주듯이 필자의 손을 꼭 잡고 차를 요리조리 피해나가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던 필자를 안전하게 건네주었다. 자그마한 사례를 하려했으나 청년은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그의 도움은 잊혀질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필자에게 남아있다.

"이슬람교에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카이로대학의 이슬람문명 교수인 하디디 박사는 말했다. 또한 '선행이나 도움'을 보는 서구세계와 이슬람세계간의 근본적인 차이로 하디디 박사는 '도움에 대한 보상심리'를 지적했다. "미국인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 반드시 보상을 받으려는 경향이 대부분이지만 이슬람세계에서는 보상없이 도움을 베푸는 것을 원칙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루는 칸 칼릴리시장의 인파를 헤치고 이슬람문명연구소를 찾아가던 중 필자 바로 앞에 두 젊은이들이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더니 결국에는 주먹싸움으로 가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금방 두 사람을 뜯어말렸다.

곧 이어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두 사람이 친구처럼 다정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물론 이를 말렸던 사람들은 시장거리의 상점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다. 두 사람을 강제로 화해시켰던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일터로 되돌아갔다.

필자의 눈앞에서 벌어진 이 일은 한 동안 머리 속을 지배하면서 온갖 의문을 던졌다. 금방이라도 서로를 죽일 듯 하던 사람들의 극적인 화해 모습은 가히 예술적이었다. 리비아 출신 학생인 아사달라가 이집트인을 보는 시각은 바로 "강(江)사람들은 순하다"는 논리였다. 나일강이 이집트사람들을 순하고 평화롭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반면에 그가 자랐던 리비아는 모래사막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많이 거칠다고 했다.

이슬람국가에서 거의 20년 이상을 지내고 있는 아메리카대학의 이슬람문화연구소장인 버나드 오케인교수(56세)는 북아일랜드 출신이다. 그가 이집트에서 계속 살고 있는 이유는 사실상 매우 단순하다. "한 번은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다 갑자기 자동차에 이상이 생기면서 차가 멈췄다. 사실 차가 섰던 곳은 외딴 곳이어서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지나가던 차들은 결코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차들이 모두 멈추어 나를 도와주겠다고 몰려들었다. 사실 이런 일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지극히 드문 일"이라면서 이집트사람들의 따뜻한 인간미를 칭송했다. 해마다 이집트를 찾는다는 미국인 로즈메리 부룩교수는 이집트와 인연을 맺은지 삼십년째.

삼십년전 카이로의 아메리카대학에서 만난 미국인 남편과 결혼한 후 딸을 출산했다. 그 딸이 이번에 카이로의 알렉산드리아대학에서 고고학강의를 맡게됐다며 자랑했다. 브룩 교수도 다른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집트인들의 친근함을 첫번째 미덕으로 꼽았다.

"이집트사람들은 순박하기 그지없어 마치 옛 고향사람들을 만난 것처럼 편안하다"고 말했다. 필자가 만났던 그리스인 스테파노스(67세)씨는 이집트출신의 그리스인이다. 이집트에서 태어난 그는 아테네에 유학한 3년을 제외하고는 내내 이집트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다른 그리스사람들과 함께 나세르혁명이 일어난 후 이집트를 떠날 수 있었음에도 남아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집트인들에 대한 신뢰'였다. "소수민족에서 극소수의 외국인으로 전락했고 소수종교인 그리스정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오케인교수는 "이집트는 이슬람세계에서도 특별한 나라로서 사람들이 너무나 정직하고 따뜻하다"면서 고국인 북아일랜드로 돌아가기 보다는 이집트에서 계속 살기를 원했다.

하영식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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