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북한을 탈출, 중국 동북 3성에 머물다 지난해 11월 한국에 입국한 함경남도 출신의 탈북자 전창호(31.가명)씨. 그는 지금 2개월 일정으로 서울의 합숙소에서 한국사회 적응교육중이다. 입국 3개월이 지났지만 그에겐 아직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낯선 땅에 도착한 그가 남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저를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뭘 해서 먹고 살 것이냐"고 물어옵니다. 그러나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아직 한국 사회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있을 땐 한국은 살기가 좋아 강도나 도둑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막상 한국에 와서 텔레비전과 신문을 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취객을 노리는 '퍽치기'가 있다는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함경남도 출신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은 그곳에 삽니다. 그렇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돈 벌러 다른 도시에 가 있는 줄 압니다. 친구 집에 며칠 갔다오겠다고 1997년 집을 떠났습니다.
북한에는 고향을 떠나 떠도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당국에서도 그러려니 하고 맙니다. 언젠가는 제가 중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한 소문이 집에도 도착하겠지요. 그때 부모님들은 안도와 불안이 교차하는 한숨을 내쉴 것입니다. 가족들이 무사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1999년에 중국공안(경찰)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됐지만 이듬해 다시 중국으로 도망쳤습니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빠져나가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곳곳에 검문소가 있지만 '사업(뇌물로 로비)'을 하면 대체로 통과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넘어오기는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한국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남한사람들이 품고 있는 적대감입니다. 남한사람들은 저희 탈북자들을 게으른 사람들이라며 고용하려들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남한사람처럼 부지런하지 못합니다. 출근.지각은 흔해빠진 일이고 맡은 일을 다 하지 않는 버릇도 있습니다. 또 참을성이 좀 부족해 걸핏하면 화를 내고 싸움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습관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내 것' 개념이 거의 없습니다. 일찍 출근해 열심히 일해도 내게 돌아올 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느릿느릿, 대충대충 일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춥고 배고픈 땅에 살다보니 짜증도 잘 냅니다. 가진 것이 없고, 북한출신이라는 약점도 있기 때문에 괜히 자존심을 세우게 되고 쉽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남한사람들이 농담으로 던지는 말도 우리는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언어습관도 한국 생활에 큰 장애가 됩니다. 북한 사람들은 '괜찮다, 좋다'는 의미로 '일없시오'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그것이 남한 사람들에게는 싸늘한 부정의 의미로 들린다고 합니다. 고치려 노력하는데도 버릇이 된 탓에 무의식중에 툭툭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감사의 인사에도 익숙하지 못합니다. 마음은 열 두 번도 더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남한사람들이 우리들의 그런 습관을 뻔뻔스럽기 때문이라고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고맙겠습니다.
참 특이한 것은 남한학생들은 참 열심히 공부한다는 사실입니다. 북한학생들은 공부하지 않습니다. 공부해도 별로 나아질 것이 없기 때문에 학창시절을 그저 놀며 보냅니다. 영어를 배워도 영어를 할 줄 아는 학생이 드뭅니다.
한국은 확실히 기회의 땅입니다. 부지런하기만 하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북한에 비하면 훨씬 낫습니다. 한 2, 3년쯤 남 밑에서 열심히 배운 다음 제 장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돈을 다소간이라도 벌면 남한의 배고픈 이웃을 돕고 싶습니다.
한국 정부와 여러 단체에서 저희 탈북자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남한 시민들 중에는 '탈북자나 북한 주민을 돕는 대신 한국의 배고픈 사람들이나 도와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들어 알고 있습니다. 도와주신 많은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가족을 북한에 남겨두고 혼자 남한으로 온 저희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입니다. 부디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말고 평범한 이웃으로 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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