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망명사태'와 탈북자의 인권

"위험과 절망에 내몰린 우리 북한난민 25명은 오늘 당신들 앞에 서있다. 우리는 더이상 박해의 공포속에서 수동적으로 운명을 기다리느니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겠다고 결심했다. 중국당국이 또다시 우리를 강제송환하려 한다면 독약으로 자살하겠다. 국제법에 따른 난민자격을 간곡히 요청한다…".

14일 오전 중국 베이징주재 스페인대사관에 기습적으로 들어가 한국으로의 망명을 요청한 탈북자들의 눈물어린 이 호소가 중국당국에 의해 받아들여지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

우리정부는 스페인.중국정부와 적극적인 교섭에 나서 이들의 '필사의 탈출'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전력투구를 촉구하며, 차제에 그동안 남북관계를 지나치게 의식, 미온적으로 대처해온 탈북자대책과 인권문제를 보다 근원적으로 생각하는 자세 전환을 기대한다.

사건직후 중국외교부는 '중국.북한간에 난민문제는 없다'는 기존입장을 되풀이, 외교적 파장의 확대를 경계하고 있지만 우리는 지난해 6월 장길수군 가족의 '제3국을 통한 한국행'의 선례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탈북자들은 마땅히 그들이 살기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중국당국은 '강제송환 당하느니 차라리 독약을 먹고 자살하겠다'는 이들의 망명성명에 아무런 흔들림도 없는가? 탈북-강제송환-재탈북에 왜 이들이 목숨을 걸었는지 읽어주기 바란다. 다시 송환되면 이들에겐 죽음뿐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 사태와 함께 걱정되는 것은 곧이어 되풀이될게 뻔한 중국당국의 탈북자 단속강화이다. 집계주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중국정부는 1만명, 우리정부는 2만~3만명, 탈북지원 단체인 NGO들은 무려 20만~30만명이 대륙을 떠돈다는 이들 탈북자들이 또다시 강제송환의 악순환에 휘말리게 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와 식량을 찾아 중국.북한의 국경지대에서 떠도는 탈북의 몸부림이 수두룩하지만 '서울행'은 그야말로 행운일 뿐이다. 길수가족의 한국행이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탈북자에 대한 난민지위 인정 등 국제법에 입각한 인도적처우 보장을 중국측에 공식권고 했지만 북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중국의 입장은 아직은 '노'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 인권문제가 진전되지 않는 현실에서 탈북과 제3.제4의 집단망명이 끊임없을 상황이고 보면 탈북자문제를 이토록 미온적이게 방치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대중(對中) 대북의 관계에서 매우 어려운 과제이긴 하나 현실적으로 돌출하는 문제를 덮어두고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면 그 대화는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울러 유엔과의 협조를 통해서라도 탈북자의 인권, 난민지위의 문제가 '참을성있게' 거론되어지기를 희망한다. 탈북자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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