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선후기 여성들 자아성취 노력 많았다

우리 문학작품 속에서 강한 자기주장,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로움, 호연지기를 갖춘 여성상의 출현은 언제부터였을까. 열녀비를 세우고, 열녀를 강요하던 인습의 끝은 언제쯤이었을까.

한국어문학회가 최근 발간한 '어문학 (75호)'에 논문 '조선후기 전(傳)에 나타난 여성상의 변모'를 실은 임유경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18세기 조선시대 문학작품에서부터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여성 주인공이나타났다고 싣고 있다.

이는 '남편에 종속되는 삶을 살던 앞 시대의 여성과는 달리 사고를 하고 판단할 줄 아는 여성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변모는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고 임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임교수는 조선후기 문학작품에 나타난 '용기와 결단력을 지닌 여성' '학문과 우정을 사랑한 여성' '천성의 자질을 갖춘 하층 여성'을 예시,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여성작가 임윤지당의 '최홍이녀'전을 보자. "무인의 처와 딸로서 무인이어떤 이에게 살해당하자 수년 동안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죽이고 나서 관가에 자수하였다.

조정에서는 의롭게 여기고살인죄를 용서해주었다 한다". 윤지당은 글의 마지막에서 "두 사람의 일이 '열'하며 '효'이고 '용'까지 갖추었으니 남자라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쓰고 있다. 단지 수동적으로 남편, 아버지를 따라 죽거나 인내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원수를 갚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시기 주목되는 것은 자아성취를 위해 애쓴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들. 남당 한원진의 문집 '한씨부훈'에 적힌 가장(家長) 섬기는 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부인은 일심으로 남편의 선행을 도와서 남편의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게 해주고, 잘못을 하면 구해주며 선행으로 이끌어야 한다'.

임교수는 글에서 "무조건적으로 여필종부(女必從夫)를 말하지 않고, 남편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라며 "이를 위해선 상당한 식견과 남편을 능가하는 판단력이 있어야 하고, 주체적인 여성이 되어야 하는 당시 여성의식의 변모"라고 평하고 있다.

서민층 또는 하층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시기의 특징. 제주도 기생 '만덕'은 제주도에 들었던 커다란 기근을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을 모두 풀어 구휼함으로써 정조실록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정조대 재상 채제공은 그녀에 대한 글에서 '만덕은 그 성격이 활달하고 상당히 배포가 큰 대장부의 기상을 가진 여성'으로 그리고 있다.

임교수는 글 말미에서 "앞시대 '손목 한번 잡혔다는 이유로 죽던' 열녀들이 조선 후기부터는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실천적인 행동을 하는 등 후기사회적인 면모를 보여준다"며 "실제 역사에서의 변모라기보다 작가의식의 변화, 여성의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를 내리고 있다. 우리시대 어머니, 아내, 딸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혹은 어떤 모습이길 바랄까.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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