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한나라당...정신 차려라

야당시절 DJ의 정치적 영향력이 한창 드셌던 6공(共)말 무렵 호남지역의 모신문사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 이런 자조 섞인 농담이 나돌았던 적이 있다.

'선거철이 돼도 우리지역에서는 선거기사 쓸 만한 거리가 별로 없다. 그 이유는 DJ가 공천을 내주는 순간 선거는 끝나버리고 당락이 뻔해진 선거 뒷 얘기는 쓰나마나 재미 있을 게 없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쪽인 영남지역에서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바로 지난 선거때만 해도 한나라당 간판만 내걸면 장삼이사(張三李四) 무조건 당선되다시피 싹쓸이를 했으니까. 영남쪽 언론사 기자들도 피장파장인 셈이다.

'공천=당선'의 등식이 생겨난 것은 지역주의 바람이 강해지면서부터 굳어졌다고 봐야한다.당 총재의 입김과 낙점이 당선을 좌우했던 시절에는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결정이나 후보 심판은 다분히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기준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강했다

정강정책이나, 선거공약의 내용이나, 후보인물의 됨됨이보다는 공천권자의 카리스마나 정치헌금 지역정서 등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는 기이한 선거문화가 엄연히 존재했었던 것이다.

엊그제 지역의 모 전직 부군수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기 위해 1억원을 건넸다가 구속된 사건은 여전히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런 기이한 선거문화가 이어져가리라는 불신을 던진 사례다.

과연 그 전직 부군수 한명의 예외적 사례였을까."3억원을 주기로 하고 1억을 먼저 건넸음에도 떨어진 것은 나보다 더 많이 주겠다는 후보가 나오니까 되돌려 준 것 같다"는 그의 볼멘소리가 아니더라도 많은 유권자들은 돈놀음 공천의 실체를 의심하게 된다.

수십억원을 써야하는 본선거를 앞두고 공천을 따내는 순간 게임을 끝낼 수 있는 지역정서와 선거분위기가 있다면 후보자로서는 싸게 먹히고 돈발이 정확히 먹혀드는 공천헌금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들 정치꾼들에게는 그것이 모든 정치부패의 씨앗이든 아니든 가릴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가릴 필요조차 없을지 모른다.

요즘 한창 이벤트성 경선을 치르고 있는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과 대구.경북의 광역.기초단체장 후보 경선을 둘러싸고도 '돈시비'가 끊임없이 따라붙고 있다. 언론이 말하는 '이심'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공천낙점을 말하는 것일 게다. 후보자들의 머리 속에 그려진 '이심'의 등식을 풀어본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총재 낙점=경선지원=공천=당선. '이심'의 실체가 있다면 시장이든 군수든 시의원이든 이회창씨가 엄지손가락을 세우면 당선되고 거꾸로 세우면 낙마한다는 식의 계산법이다. 그러나 과연 이번 6월선거에서 이심이 곧 한나라의 공천 보증서가 되고 한나라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될까.

대구.경북의 유권자들은 이심이 점찍어주는 대로 이리 찍고 저리 뽑는 우민(愚民)들일까.'장삼이사 우수마발' 어느 누구든 한나라당 공천만 따내고 깃발을 앞세우기만 하면 당선될 만큼 한나라당의 지역정서가 지금도 지난 선거때처럼 불길같을까의문은 꼬리를 문다.

민주당과 DJ정권이 끊임없이 게이트비리와 권력형부패로 자살골을 넣어 주고 실축으로 코너킥을 주는데도 스코어는 여전히 3대0인 축구경기처럼 제실력으로는 도무지 산뜻한 골을 못넣는 야당, 30% 안팎의 지지율을 맴돌며 DJ가 싫어서 찍어준 표만 주워담고 있는 듯한 야당의 모습에서는 그런 의문의 꼬리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앙당의 내분, 공천 돈놀음, 경선불복과 낙선탈당, 거기다가 5공시절 인물의 느닷없는 시장 경선참여로 불거진 '이심'논란.

이제 한나라당은 정신 차리고 깨끗하고 강한 야당의 본 모습을 빨리 되찾아야 한다. 게이트 부패와 부정으로 얽힌 현정권의 교체를 원한다면 스스로 변하고 남의 변화를 읽을 줄도 알아야 한다. 광주를 보라. 한화갑 후보를 제치고 노풍(盧風)을 불게 하는 여당의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

당보다는 사람중심, 지역보다는 당중심으로 정치적 판단을 하는 여당의 새로운 변화를 읽을 줄 모르고 자신들이 비판했던 '김심' 대신 '이심' 운운하고 있다면 공천=당선이라는 과거의 등식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여당쪽의 새로운 강풍 앞에서 당내분에다 공천헌금비리나 터지고 이심 논란이나 다투고 현직시장의 10년 묵은 비자금 괴문서 시비를 당내부에서 그것도 경선직전에 들춰내다가 다시 검찰에는 문서제출을 거부하는 한나라당의 흔들리는 모습이 너무 걱정스럽다는 말이다.

지역 유권자들이 바라는 것은 당권과 공천의 다툼보다 월드컵을 잘 치르고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뤄주는 것이다.한나라당은 하루 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대여 전열을 추스려라.

김정길(본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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