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성심복지의원. 가난한 사람들이 무료로 의료 혜택을 받는 곳이다. 1992년 3월 개원한 이후 올해로 10년째. 없는 것도 서러운데 몸까지 불편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현실. 하지만 이들을 위해 대가 없이 땀 흘리는 이들도 많아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아름답다.
대구시 중구 남산동 적십자병원 골목으로 접어들어 천주교 순교기념관 관덕정을 조금 지나면 길가에 성심복지의원이 자리하고 있다. 10년전 중구 남산동 인쇄골목 한 병원 건물을 기증받아 처음 문을 열었지만 밀려드는 환자들과 낡고 비좁은 시설 때문에 지난해 12월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의원을 찾는 노인들의 편의를 위해 대대적으로 내부도 수리했다.
일요일 오전. 기자가 찾은 때가 한창 바쁜 시간을 넘긴 탓인지 조금 한산하다. 그래도 몸 여기저기가 불편한 노인들이 복도에 앉아 자기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 사이로 자원봉사에 나선 학생들이 노인들을 부축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고 약을 전달하는 일로 여념이 없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풍경이다. 신발을 벗고 복도로 올라서니 보일러를 깔아놓았는지 따뜻한 온기가 발에 전해온다. 휴일이지만 편안히 집에서 쉬지 않고 봉사에 나선 의료진과 약사, 학생 등 다양한 층의 자원봉사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일요일 오전은 한방진료시간. 오후에는 내과 진료로 이어진다. 휴일에 의원을 찾는 환자만 해도 200명 안팎. 대부분 생활보호대상자이거나 영세민이다. 연령대도 60~80대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진료혜택을 주지 않는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 찾아오면 어쩔 수 없이 돌려보낸다. 철저히 없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복지시설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경우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경과를 체크하는 '재택 콜'을 실시하고 있다.
관리기간은 5년. 한번의 진료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주고 있다. 성심(誠心)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다. 직원들은 전부 사회복지사 자격을 갖고 있다.
성심복지의원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260명이다. 월.수.금요일 치과, 목요일 피부과, 토요일은 통증, 물리치료(1, 3주)와 신경과(2, 4주)로 나눠 진료한다. 일요일은 한방과 내과진료 날이다. 화요일만 문을 닫는다.
계명대 의료원, 대구가톨릭대 병원, 성모병원에서 근무하는 50명의 의사들과 간호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약사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의료봉사에 나선다.
자기 근무시간을 피해 오전, 오후 빈 시간에 진료를 맡고 있다. 가톨릭시설이긴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은 종교를 초월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인술을 펴고 있다. 불자도 있고, 개신교 신자도, 종교가 없는 사람도 남을 돕는 마음은 매 한가지다.
의원의 운영비는 가톨릭 사회복지회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또 후원기업들이 약품을 지원하거나 개인, 사회단체들의 협조를 얻어 어렵사리 꾸려나가고 있다. 진료도 중요하지만 의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한 끼의 식사는 더욱 중요하다는 게 의원측의 생각.
대구 푸드뱅크 중앙점의 지원을 받아 환자들에게 매일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더러 자원봉사자들의 아이 돌잔치 때 준비한 음식도 싸들고와 나눠 먹기도 한다. 진료를 마치고 나서는 이들에게 콩나물 한 봉지씩 건네는 등 하나라도 나눠 갖는 게 이곳의 철칙이다.
성심복지의원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장글라라(51)씨는 언론의 관심이 마뜩찮다. 이제까지 인터뷰 요청에 한번도 응하지 않았다. 그냥 성심을 다해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 그뿐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자기들이 하는 일이 세상에 알려진다는 것을 영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완강한 태도를 누그려뜨렸다. 자신은 어떻더라도 관계없지만 자원봉사자들의 훈훈한 이야기는 경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장씨는 소년가장이라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5년동안 의원에서 남을 위해 묵묵히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는 권오성(경북기계공고 3년)군의 장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걱정하고 팔을 걷어붙이는 사람이다.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질 수도 있는 형편이지만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권군을 생각하면 기특하기만 하다. 아직 혼자인 장씨는 권군이 마치 친자식같다.
그는 요즘 권군의 진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권군이 원한다면 이스라엘 키부츠와 같은 봉사 프로그램에도 보낼 심산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길을 열어주고픈 마음이 앞선다. 그의 가슴에는 '희망'에 대한 확신이 누구보다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장씨는 그처럼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전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처음에는 환자로 의원을 찾았다가 의원측의 주선으로 관절수술을 받고 완쾌된 후 서울로 유학, 공부를 끝내고 다시 의원으로 돌아와 지금은 직원의 입장에서 봉사하는 이도 있다.
장글라라씨는 의원내 시설 이곳저곳을 안내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한 '건강'의 개념을 되뇌었다.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과 함께 영적 건강을 위해 조건없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
그들의 손길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그나마 한번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성심복지의원에서 확인한 것은 삶에 지친 이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보내며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의원을 나서면서 '희망'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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