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남구엔 성조기 안돼"

'성조기를 게양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대구 남구청이 성조기 게양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월드컵 분위기 조성을 위해 각 구.군이 배정받은 국가의 국기를 관내 도로변에 게양토록 지시받았지만 미국 서포터스를 배정받은 남구 주민들의 반미감정이 워낙 거세 성조기가 남아나지 않기 때문.

실제 지난 11일 구청은 남구 이천네거리에서 영대네거리 구간 도로변에 태극기와 성조기 430조를 게양했지만 하루만에 성조기 수십기가 부러지고 째지는 등 훼손된채 발견됐다.

이에 따라 구청은 곧바로 훼손된 성조기와 함께 더 이상의 불상사를 막기 위해 성조기를 전부 수거했지만 재게양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시민단체까지 서포터스 재배정을 요구하고 나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미군기지 되찾기 대구시민모임은 최근 성명을 내고 대구월드컵조직위원회와 대구시가 각 구.군별로 배정한 월드컵 서포터스 계획 수정을 요구했다.

시민모임은 "미군기지 주둔으로 수십년간 피해를 본 남구 주민들에게 미국팀 응원을 맡기는 것은 주민 정서에 역행하는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또 "계획이 수정 또는 철회되지 않으면 미국팀 서포터스 불참, 사이버 시위, 대시민 서명운동 등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가겠다"며 반발했다.남구청 홈페이지에도 남구의 미국 서포터스 반대 및 성조기 게양에 따른 주민들의 항의글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최대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을 개최하는 주인으로서 성숙된 시민의식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지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보여줬던 미국의 편파적인 태도때문에 반미감정이 더욱 고조됐지만 월드컵에서 대구시민도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미국과 다를바 없게 된다는 것.

시민 박지영(30.여.대구시 남구 대명동)씨는 "대구를 찾는 다른 나라 선수단에게 우리가 친절을 베풀듯 미국 선수단에도 똑같이 따뜻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대해 대구가 성숙된 시민의식을 가진 도시임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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