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김경수의 행정의 원시성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행사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정부가 국민들에게 부탁하는 일정한 이해와 협조의 항목 속에는 이른바 자가용 차량의 부제운행이 간혹 포함된다. 한 달 뒤로 다가온 한국-일본 월드컵 대회의 개최와 관련해서도 자가용 부제운행은 이미 확정된 잠정적 교통 정책이 되었다.

경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도시에 따라 자가용 차량의 2부제 내지는 10부제를 시행하는 것에 원칙적으로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 많치 않은' 사람들의 불만의 내용은 꽤 오래된 것이고 또 결코 미미하지 않다.

그것은 자가용의 부제 운행이라는 시책이 근본적으로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 사이의 근본적인 갈등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가용 운전자들은 차량을 소유하고 운전하는 대가로 제반 차량 관련 세금과 보험료를 지불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세금과 보험료는 모두 일정 기간의 사용을 전제로 하고 미리 선납된다. 그런데 차량 부제가 시행되면 결국 자가용 운전자들은 세금과 보험료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 동안 차량 운행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권리를 행사하려면 돈을 내라고 하고선, 돈 받은 뒤에 권리 행사를 참아달라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말이 안 된다.

결론은 자가용 부제 운행에 의해 차량을 운전할 수 없게 되는 날의 보험료와 세금은 의당 환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또는 며칠 분의 보험료가 당장 아까워서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숱한 개인과 집단 민원이 근본적으로 금전적 문제들과 결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개인의 이익을 고려하지 못하고 대의명분을 앞세우는 우리 행정의 발상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국제 행사를 위해 차량 부제가 필요하다면, 몇 부제로 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그에 합당한 세금의 환급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순서는 뒤바뀔 수도 있지만, 이런 불공정을 고려조차 않는다면 우리의 행정은 원시성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비단 이 문제만이 아니다.

계명대교수.문예창작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