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비가 새는 안방에서 우산을 받쳐들고 오히려 우산없는 사람을 걱정했다는 황희 정승은 조선조의 대표적 청백리다. 그런 그가 뇌물수수로 사직한 적이 있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종 10년에 한 역리(驛吏)로부터 말 한 필을뇌물로 받고 탄핵에 시달리자 사직서를 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과연 범인(凡人)들은 얼마나 뇌물로부터 자유로운지 새삼 의문이 간다.
인도 찬드라굽타 지방에는 기원전 2천300년경에 관리가 정부로부터 공금을 횡령하는 40가지의 방법이 열거돼있으며 고대 이집트 람세스 왕조 시대 파피루스에도 관리들의 뇌물수수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하니 인류의 역사는 곧 뇌물의 역사인 셈이다.
▲그러나 사실 뇌물의 유혹에 가장 약한 것이 인간이면서도 이를 가급적 멀리하려는 것은 뇌물이 부패의 출발점이요,조직 붕괴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로마가 오랫동안 불평등한 계급제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층이 남보다 많은 희생과 봉사를 하겠다는'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귀족들은 전쟁이 나면 앞장서 목숨을 바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오늘 선진자본주의국가의 사회 기반이 탄탄한 것도 이런 정신을 면면히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14일 발표한 '뇌물 가능성'에서 한국이 조사 대상 21개국 중 러시아.중국.대만에 이어 세계4위를 차지하는불명예를 안았다. 세계 13대 경제 대국이 아직까지 이런 암적 요인을 한껏 짊어지고 있다니 그야말로 모순투성이다.
99년 첫 조사 때에도 19개국 중 2위를 차지해 세계의 조롱거리가 됐었는데 3년후에도 같은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노릇이다. 이런데도 엊그저께 부패방지위원회는 현재 세계 42위인 국가청렴도 수준을 2005년까지 세계 20위권 이내로 끌어올리겠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니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더 큰 불행은 이같은 사실에 국민 모두가 공분은커녕 침묵으로 일관하는 무관심에 있다. 자고 나면 터지는 권력형 비리에다 하루아침에 수십명씩 불로소득 억만장자들이 탄생하는 희한한 나라에 살다보니 뇌물에 흥분할 기력마저 잃은 것인가. '돈이 최고'라는 극단적인 배금주의에물들어있기 때문인가.
하기야 우리나라 청소년의 90%가 한국을 '부패한 나라'로 보고 있는 상황이니 국제투명성기구에도 잘 봐달라고 뇌물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제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투명하지 않은 사회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뇌물 자체보다 뇌물에 점점 면역돼가는 현실이 더욱 두려울 뿐이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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