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노블레스 오블리제

나라경제가 어려워지고 사회의 혼란이 지속되면서, 우리사회 상류층의 사회봉사와 헌신 등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는 일이 잦아졌다.지식이나 기술 혹은 물질적 부 등 사회로부터 축적한 유·무형의 재산을 다시 환원시키는 상류층의 사회적 책임의식을 지적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는우리사회 각 분야에 존경받는 상류층의 필요성이 점점 커져가고 있음을 말한다.

이런 때에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우리 미술계의 상황을 둘러보면, 미술계 역시 책임있는 상류층의 역할이 매우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전국적으로, 고정적으로 그림을 구매하는 콜렉터는 모두 몇 명이나 될까? 어쩌다 실내인테리어를 위해 소품을 구입하거나 10점 내외의 작품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전시나 경매 등을 통해 작품을 구입하는,콜렉터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은 전국을 통틀어 500명 내외이다.

2002년 현재 등록되어 있는 미협회원 수가 1만3천500여명에다가 대구지역 회원수는 1천여명에 이르고,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많은 화랑과 작가들이 비용을 들여 전시를 열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수많은 화가와 화랑들의 전시에서 팔리는 작품은 그야말로 콜렉터 수만큼이나 적다.

그나마도 작품소비가 서울이나 부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지역화랑과 화가의 사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시에서 이루어지는 작품판매의 수익은 전시를 열어준 화랑과, 화가에게로 돌아간다. 화랑으로 돌아간 수익은 다시 지역에 좋은 전시를 열 수 있는 소중한 재화로, 화가에게로 돌아간 수익은 그가 앞으로 더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는 재투자로 환원된다. 이렇듯 자신의 지역에서 그림을구매하는데 소비한 재화는 지역미술계의 발전과 그 수준을 높이는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밑거름인 것이다.

똑같은 작품인데도 대구에선 팔리지 않았던 작품이 지역을 옮겨 전시하면 매진사례를 빚는 해괴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대구의 현실이다. 주위에서 빈번하게 접하게 되는 타 지역으로의 미술품 원정구매는 결국 재능있는 지역작가의 출향을 부추기게 하고 지역화랑들이 좋은 전시를 유치할 수 없게 만들어 대구에서의 좋은 전시, 수준높은 작품감상의 기회를 요원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미술평론가-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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