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 데스크-화려한 '월드컵 휴가'

신화 창출의 행진은 멈출줄 몰랐다. 그것은 4천700만 겨레의 힘이었다. 또 다시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 함성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16강, 8강. 잇단 승전보. 우리의 숨은 힘을 재확인해 나가는 순간들이었다.어젯밤 이탈리아와의 월드컵 16강전 경기는 정말 잘 싸운 한판이었다. 선수, 감독, 붉은 악마, 전국민이 말 그대로 혼연일체 하나가 됐다.

경기전 승리를 반신반의하던 국민들은 이제 그 어떤 나라와의 경기에도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됐다.전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달성한 월드컵 8강 진출의 의미는 단순히 축구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아득하게만 보이던 유럽축구의 벽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IMF 사태후 한동안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다시 찾게 됐다. 정말 큰 성과다.

이제는 월드컵을 통해서 확인한 우리의 폭발적 잠재 에너지를 어떻게 응집시켜 당면한 경제난을 극복하고 지역간, 계층간, 정치세력간 갈등을 해소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남은 과제다.

축구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우리의 능력은 이미 어느 선에 올라서 있다. 조금만 더 노력을 기울이면 금방 세계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는 전세계 60억 인류의 눈과 귀가 쏠린 대회를 거의 치러내고 있다. 국가적 시스템이 무리없이 돌아간다는 방증이다. 당국의 철저한 준비와 성숙한 시민의식의 결과다.

한국팀의 경기때마다 전국의 수백개 길거리 응원장에 한 곳당 수만~수십만명씩의 시민이 모였으나 일부 흥분한 시민들의 정도를 벗어난 축하세리머니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사건사고가 없었다는 점도 우리가 평소 자조해온 후진성을 벗어났다는 풀이가 가능한 대목이다.

10, 20대 젊은 층의 활화산 같은 애국심과 참여의식을 확인한 것도 큰 성과다. 그들은 대다수 기성세대가 생각하듯 자신만을 아는 소아적 신세대가 아니었다. 우리의 미래를 믿고 맡겨도 좋을 만큼 신뢰를 얻기에 충분했다.

우려했던 국제 테러분자들의 움직임도 철저한 사전대비로 원천 차단됐다. 다이내믹한 코리아의 힘을 보여준 2002 월드컵. 우리의 숨은 힘을 다시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고개를 월드컵 바깥으로 돌리면 과제는 첩첩이다.지난주 민선3기 지방자치를 이끌어 나갈 새로운 대표들이 선출됐다. 이들에게 요구할 사항을 다시 한번 챙겨봐야 하고 이들이 주민들의 진정한 심부름꾼이 될 수 있도록 견제하는 감시자의 역할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다음달부터는 전국의 금융기관이 주5일제 근무에 들어간다. 사회적 합의가 덜된 상태에서 금융기관에서부터 먼저 시행되는 제도인 만큼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향후 주5일근무제 전면도입의 시금석인 만큼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대통령 친인척 등 권력 주변의 부정부패 척결도 아직 남은 과제다.

이제는 정치인들의 차례다. 국운상승의 기류와 국민적 단합의 계기는 마련됐다. 분출하는 열기를 한데 모아 시너지효과를 창출해 내는 역할은 당연히 위정자들의 몫이다.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정치인들은 히딩크의 리더십을 벤치마킹이라도 하라는 따가운 소리를 더 이상은 듣지 말아야 한다. 12월 대통령선거는 국가경영의 새로운 리더십이 창출되는 전기가 될 전망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나타난 국민적 힘이 대통령선거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문구가 생각난다.그간 우리는 정말 열심히 일해왔다. 그런 우리에게 이번 6월 한달간의 월드컵은 정말 화려한 휴가다. 익히 아는 것처럼 휴가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재충전의 시간이다. 휴가를 한껏 즐긴 뒤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어서자. 그것이 월드컵 승리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지국현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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