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상덕의 대중문화 엿보기-한계치 깨어버린 월드컵

목욕탕 욕조에 들어갈 때도 사람마다 좋아하는 온도가 따로 있다. 섭씨 온도 25도를 견디는 사람이 1도만 높아도 참지 못하는 예도 있다. 1도의 온도가 인간피부 감각의 쾌적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겠다.

사람의 감정도 꼭 같다. 더는 참을 수 없는(忍無可忍) 경우가 많다. 불만스러운 외부의 감정자극이 있을 때 성난 감정을 일정부분 누르기는어렵지 않다. 하지만 계속 이어지면 참지 못한다. 물이 끓는 비등점과 같이 인간에게도 '자극 한계치'라는 제한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붉은 색, 태극기'는 지금까지 대중문화의 소재로는 한계치였다. 대중문화생산자가 공적 문화코드로 다루는 것 외에는 금기였다. 한때 유행하던 테이프 맨 끝자락의 '아하~ 믿음 속 상거래로...'에서나 나옴직한 나라이름이 '대한민국'이었다. 자조적이고 비하에 가까웠다.

감동과는 무관하게 혼자서 쓰고 듣는 말이었다. 시민동원체제를 연상시키는 반문화적 국호로 받아 들였었다. 붉은색도 마찬가지다. 색채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였다. 술잔을 돌리면서도 좌익척결을 외치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었다.

상대를 '빨갱이'라고만 해도 무조건 이기던 시절이 기억에서 사라진 것도 아니다.태극기는 두말 해 무엇하랴. 장롱에 고이고이 접혀져 국경일에나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니다. 월드컵은 이런 대중문화의 '한계치'를 깨어 버렸다. 거리로 나오게 했고 광장으로 불러 들였다. '대~한민국'을 국악의 기본박자에 맞춰 함성 지르게 했다. '비 더 레즈(Be the Reds)''빨갛게 되자'를 통해 6.25이후의 터부를 무너뜨렸다. 태극기가 원피스로, 두건으로거리를 누비게 된 것도 월드컵 때문이다.

대중문화를 '1회용 문화'라고 거칠게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오늘 여기에서 인기를 모아 돈벌이가 되는 것이 내일 유행이 지나면 쓰레기더미가되는 것이 대중문화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월드컵 현상을 1회용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심오함에 매달리는 것을 지극히 거부하는 대중들의 일시적인충동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대중문화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런 이들에게 '대~한민국'을 외치는 대구 범어로타리의 서포터스를 보라고 권한다. 본다면 달라진다. 대중문화의 적이던 금기나 선입견이 깨어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터부여 고정된 틀이여 안녕.

한상덕(대경대 방송연예제작학과 교수)sdhan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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