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민선 단체장이 실패하려면

먼저 새내기 단체장들은, 다시 말해 어제 일제히 취임식을 가진 초선의 시장 군수 구청장들은 블랙리스트 작성부터 속히 서둘러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자신을 외면했던 공무원들은 샅샅이 손을 봐야 한다는 얘기다.

'미운 털'들은 가차없이 한직으로 날리고 승진에서 물을 먹여 본때를 보여야 할 것이다. 초장에 '군기'를 잡아놓지 않으면 '노회'한 공무원 조직을 장악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그와 달리 자신에게 줄을 선 공무원에게는 화끈하게 논공행상을 안겨주어야 한다. 그래야 4년 임기 내내 떠받들려 지낼 수 있다.

앞으로 쏟아질 주민들의 민원이나 숙원사업 또한 지지표가 많이 나온 곳과 그렇지 못했던 지역을 철저히 차별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모든 '응보'에 따르기 마련인 이런저런 불평은 그럴싸한 명분으로 묵살하면 그만이다. 지금은 민선단체장이 최고이니까.

그러함에도 화합이니 통합이니 하는 주변의 '당부 말씀'에 신경이 쓰여 머뭇거리는 단체장이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이 번만 재임하고 말 게 아니라며는 지금부터 확실하게 '조직'을 다져 놓아야 후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모든 일은 하나에서 열까지 단체장이 손수 챙기라는 거다. 무릇 민선시대라 함은, 모든 '영광'과 생색이 그 고장의 최고 대표인 단체장으로만 집중하는 게 당연해야 할 것 아닌가. 따라서 부 단체장의 권한에 힘이 실리도록 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각 부서의 결재 라인을 한번씩 흔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군기잡기와 내사람 심기

그리하여 슬슬 '본전 뽑기'에 나서야 한다. 돌이켜 보면 이번 선거처럼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 힘이 부친 적도 없었지 않은가. 이런 저런 조직 가동에 든 비용만도 수월찮을 것이다. 중앙정부와 광역단체에서 위임받은 기초단체장의 인·허가와 단속권이 상상 이상으로 막강한 만큼 '무엇이든' 마음 먹기에 달렸다. 가급적 '맨 입'으로는 민원이나 청탁을 처리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놓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지난 민선 2기 단체장 중 5명의 1명 꼴이 형사소추를 당했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야말로 재수가 없었던 경우일 뿐이다. 달리 생각하면 5명 중 4명은 멀쩡하게 임기를 마쳤다는 얘기다. 더욱이 민선단체장은 똑같은 선출직인 국회의원처럼 개인후원회도 허용해 주지않는 부당한 현실 아닌가.

그러니 이번에 들어간 선거비용, 재임 중 품위 유지비, 다음 선거비용은 본인이 요령있게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 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지역유지 또는 토호세력과 긴밀하게 손을 잡으라는 것이다. 앞으로 4년동안 그들의 협조가 불가피한 경우가 한 두가지가 아닐 것이며, 이른바 여론주도층이라 불리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 손해볼 일은 없을 것이다. 적당하게 그들의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기득권을 보장해 주는 대신 민선단체장으로서 '물심 양면의 협조'를 얻으면 만사가 태평할 수 있다.

새 단체장이 신경써야 할 또 하나는 전임자의 흔적 지우기이다. 공연히 전임자를 평가·계승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가 나와서는 곤란할 것이다. 전임자와는 철저하게 차별화로 가야 한다. 가능하다면 전임자가 세워 놓은 업무 관행과 질서는 뭉개버리고 새로운 스타일을 들어앉혀야 할 것이다. 그게 변화라고 지시하는 데 누가 대들겠는가. 그래야 권위가 서고 새로운 업적을 남길 수 있다.

토호세력 비호.본전뽑기

마지막으로 연임 또는 3선에 성공한 단체장들은 나름대로 민선자치의 초석을 다졌다는 자긍심을 앞장 세워 앞으로 4년은 오로지 '놀자판'으로 가도 좋다. 초기의 열악한 자치환경 속에 수고가 컸다는 주변의 찬사도 있을 터이고, 어차피 더 이상의 출마는 법적으로 막혀 있는 만큼, 이제는 민원을 일으키는 따위의 골치 아픈 일은 피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눈치껏 축제, 행사, 해외출장, 인심쌓기 같은 속 편한 일로 세월을 보내도 4년은 금방 갈 것이다. 또 다른 '가문의 영광'을 위해 임기 도중이지만 2년 뒤의 총선을 준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고.

그리하여, 어떤 아둔한 단체장이 있어 그와 같은 유혹들을 금과옥조로 삼는다면, 자치는 물건너 갔다. 주민은 골병이 들고 그 고을은 원성으로 가득찰 것이다. 그리고 험한 꼴을 보는 단체장이 줄을 이을 지도 모른다.

김성규(정치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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