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유목민의 시대

기원전 8세기경 팔레스타인의 북부를 차지하고 있던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의 침입으로 멸망하자 수많은 유대인들이 고향을 떠났다.

또 기원전 6세기쯤엔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남쪽의 유다 왕국이 멸망되자 그때도 많은 유대인들이 이웃나라로 이주했다.'이산(離散) 유대인'이라는 의미를 지닌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단어는 이처럼 팔레스타인 외의 지역에 살면서 유대적 전통과 생활관습을 지켜오는 유대인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데서 비롯됐다.

20세기 이후 지구촌에서는 매우 다양한 이유로 모국을 떠나 타국땅에서 살아가는 이주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더구나 금세기에는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자크 아탈리도 갈파했듯이 '유목민(遊牧民)'이라는 단어가 21세기식 라이프 스타일을 상징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될만큼 사람들의 이동이 국제화되고 있다.

과거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이제 전 지구촌 주민들에게도 통용되는 말이 되고 있다.2002 월드컵은 우리에게 비할 수 없는 환희와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지구촌의 변방으로 비켜나 있던 '한국'이 이번만큼 '세상의 중심'이됐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씨줄날줄 짜인 코리아 네트워크

한편으로 이같은 뿌듯한 자긍심과 함께 우리와 관련된 디아스포라, 즉 두 가지의 유목민 그룹들을 새롭게 바라볼 기회가 됐다. 그 하나는 세계에 퍼져 있는 한인(韓人)그룹이다.

지난 세기에 파란만장한 역사적 격동기를 보낸 우리는 그 결과 전세계에 걸쳐 한인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고 있다. 20세기 전반기에는 중국과 구 소련지역, 일본, 사할린, 하와이 등지로 흩어져 갔고 이후로는 삶의 질을 찾아나선 사람들의 이민행렬이 구미(歐美)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타국땅의 한인들은 통상 500여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남북 합쳐 7천만이 조금 넘는 작은 나라에서 10% 가까운 인구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우리의 이웃 외국인 근로자들

그동안 이들 재외 한인들은 우리들에게 그리 특별한 존재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나도 별로 할 말 없는 먼 친척 같다고나 할까.그러나 이번 월드컵을 통해 우리와 똑같이 빨간 티 셔츠를 입고 잠을 설치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그들을 보며 물보다 진한 핏줄의식에 코끝이 찡해졌다.

중국의 화교(華僑) 네트워크가 용으로 비상하려는 중국에 뒷힘이 되고 있듯 씨줄날줄로 짜여지고 있는 코리아 네트워크는21세기 한국의 든든한 백 그라운드가 된다는 사실도 새롭게 각인됐다.

또하나의 유목민 그룹은 이땅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이다. 주로 아시아 빈곤국 출신인 그들은 3D 현장에서 국내 산업의 역군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만해도 8만명선으로 제한됐던 외국인 근로자는 올해부터 20만명 이상으로 확대됐고 거주 기간도 2년 체류, 1년 연장으로 장기화되고 있다.

우리의 이웃이 된 외국인 근로자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열악한 근로환경과 장시간의 노동, 저임금, 감금, 폭행, 성적 학대 등으로 그들은 손발이 잘리고 굶주리고 때로는 목숨까지 잃는 일들이 되풀이 되고 있다.

◈선하게 이용하는 지혜 필요

하지만 월드컵 기간에 이들 까무잡잡한 얼굴의 말라깽이 근로자들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국이 이길 때는 기뻐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번 월드컵은 세계인들에게 한국민을 열정적이면서도 질서정연한, 선진적인 민족으로 비쳐지도록 했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우리의이면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각 민족의 이동이 빈번한 21세기에는 자국 내의 타민족을 선한 방법으로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땅의 나그네인 그들에게 소박한 정만 베풀어도 그들은 금방 한국에 정을 느끼게 되고 친한파(親韓派)가 될 것이다. 세계 곳곳의 친한파외국인들은 한국의 국가이미지 제고는물론 치열한 세계시장에서 우리 상품의 소비자 역할도 하게 된다.

1964년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곳에서 일하는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과거를 기억하지못하는 사람은 숙명적으로 그것을 반복하게 돼있다'는 산타나야의 법칙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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