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두개의 열쇠를 가지고 다닌다. 호주머니 속의 두 열쇠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의 현관 열쇠이다.
열쇠중 하나에 상(上)이라는 이름표를 붙였고, 또 다른 하나에 하(下)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두개의 열쇠는 내 아내와 함께 집을 비울 때, 혹은 집으로 들어갈 때 필요하다.
열쇠는 현관문을 닫고 여는 데 필요한 도구일 뿐이다. 어떠한 이름을 가질 필요성이 전혀 없는 물건인데도, 당초 아래 위 자물쇠에 잘못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이름표를 붙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름표가 희미해져, 이제는 어느 것이 상인지 하인지 눈으로는 알 수 없게 됐다.
매일 나에게 주어진 하루의 몫을 치르고 난 후 집으로 돌아온다. 현관에서는 내가 늘상 가지고 다니는 두개의 열쇠를 필요로 한다. 두개의 열쇠중 어느 하나를 골라 열쇠구멍에 집어넣고 가만히 오른쪽으로 돌려본다.
어떤 날은 재수좋게도 한번에 현관문을 열 수 있는 날이 있고, 어떤 날은 다시 한번 다른 열쇠를 집어넣고 오른쪽으로 지그시 돌려보아야만 열릴 때가 있다. 그것은 너무나 불확실한 것이고 확률적인 것이지만, 난 항상 그렇게 살고 있다. 단 한번의 선택으로 문이 단번에 열리면 그 불확실하고 확률적인 것이 내 삶의 기쁨일 수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매일 50%의 확률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생각들이다. 그 확률적인 것들이 내 삶속에 먹혀들어가고 있고, 그런 불확실함은 내 유년시절부터 존재해 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앉고싶은 자리에 앉아야만 공부가 잘 된다는 믿음 때문에 유난히 일찍 학교로 달려가던 아이, 하수구 맨홀 뚜껑을 뛰어 넘을 때 뚜껑의 선을 밟지 않고 한번만에 넘어야만 된다고 믿던 아이, 동전 던지기로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아이…. 그것은 분명 불확실한 확률속에서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서른살이 훨씬 넘은 지금도 터무니없고 어처구니 없는 불확실하고도 확률적인 것을 조금 믿고 있다. 내 유년시절의 작은 신앙처럼 자리잡았던 기억들과 내가 항상 느끼는 감정은 지금도 나의 작업(그림)의 일부분으로서 점찮게 자리잡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50%의 확률속에 점을 치듯 살고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박종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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