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 르르르…".소나무 숲 매미소리가 귀를 쨍쨍 울린다. 바람 한 점 없는 7월 한 낮의 뙤약볕이 기와를 두드린다. 밭 고랑에서 고추 따는 마을 아낙의 하얀 수건머리에도 김이 모락모락 날 지경이다. 마을은 '똑똑' 고추따는 소리가 들릴만치 심심하다. 500년을 넘어 마주한 한옥은 문설주가 툭툭 갈라지듯 퉁명맞다. 그러다 미안해졌을까.
'정 그러면 쉬다 가게나' 낯선 길손에게 처마그늘을 슬며시 내어준다."오래된 한옥 한 채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여덟번, 아침 점심 저녁,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한밤중에 집을 찾아야 한다". 이번 '아름다운 古家-한옥 탐방'에 기꺼이 해설을 맡아 동행한 경일대 장석하 교수의 말이다.다녀보니 그렇더라는 말이다.
'향단'과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지은 집이다. 한 사람이 지은 집이지만, 집의 용도나 그 모양새가 매우 판이하여 흥미롭다.굽은 오르막을 올라 구릉 중턱에 자리잡은 향단의 대문채를 연다. 사랑채와 안채로 가는 입구인 '중문'이 보인다. 어른 어깨높이의 기단에 지어진 중문에는 오르는 계단이 없다. 중문 옆에는 행랑채(광채,곳간)가 길다랗다. 안채는 행랑채 위로 기와머리를 쑥 내밀고 있다.
중문을 보자. 당상관 이상이어야 올리는 '홍살(창모양의 장식)'과 본래 석자는 족히 되었을 육송 '통재'를 쓴 중문은 집주인의 신분을 알려준다. 중문 두쪽은 'ㄴ' 'ㄱ'자로 아귀를 맞춰 한점 찬 바람도 들지 않는다.중문을 지나 다시 계단을 오르면 사랑마당과 사랑대청이 널따랗다. 남자들끼리의 회합공간인 사랑채는 바깥으로 개방돼 있다.
사랑대청에선 멀리 마을어귀까지 시선이 닿는다. 노비와 소작농들이 땀 흘려 추수하는 모습에 흡족해하거나, 낯선이가 말을 타고 자신의마을을 침범하는 것을 쉬이 경계할 수 있다. '문전옥답(門前沃沓)'이나 '하마비(下馬碑)'란 말은 이같은 한옥구조에서 유래했다. 대청 방문 아래 '마름'은 방안에 앉아 손을 얹기에 편안하다.
사랑채는 안채(본채)와 등을 맞대고 있다. 사랑대청에 난 문을 열면 곧장 안마당이다. 문을 닫으면 사랑채는 안채와 독립된 공간이다.사랑대청 왼편의 방문은 '들문'이다. 들문을 들어 고정하면 사랑대청은 더 넓어지고, 30여명이 둘러앉아도 좁지 않아 대형 연회장으로 손색없다.
'향단'이 전통한옥 구조의 극치로 꼽히는 데는 바로 이 '공간융통'에 있다. 한옥내 각 공간은 독립돼 있으면서 통해 있다. 방이면서 방이 아니다. 한옥의 창을 창문이라 하지 않고 '창호'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랑대청에 난 문을 통해 멀찍이 집안으로 시선을 던져보라. 안마당을 지나 본채, 부엌, 작업공간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문 한쪽을 여니 모든 공간이 하나로 통하는 형국이다.
'바람길'을 따라 모든 문이 호응을 이룬다. 계단을 내려와 행랑채를 지나면 부엌, 절구대, 고방 그리고 안채로 통한다. 음식을 굽고, 삶거나, 곡식을 가공하는 작업공간이다.이곳에는 집의 안주인이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는데 그 방의 창을 '호령창'이라 한다. 시어머니가 음식을만드는 며느리와 아랫사람을 부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무계단으로 오르는 2층 고방에는 음식을 저장하는데, 그을음을 막기 위해 붉은색 홍살이 촘촘이 서 있다. 밖으로 나가는문 옆의 창을 자세히 보자. 창에는 나무살이 3~4cm 간격으로 줄지어 서 있는데, 마름모꼴로 빼뚜름하다. 나무살이 정면으로 서 있을 때보다 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작업공간을 지나면 집의 가장 안쪽인 안마당과 안채가 ㅁ자 형으로 배치돼 있다. 이곳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유는 특이한 채광에 있다. 벽으로 둘러쌓여 꽉 막혔음에도 답답하지 않은 것은 안마당의 위가 하늘로 뚫려서다. 사랑대청을 통한 바람과 천공에서부는 바람이 이곳에 머문다. 현대의 서양식 '아뜨리움'은 우리 선조들이 먼저 착안해낸 셈이다. 안채에 자리잡은 안마당이야말로한옥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안채의 대청마루에 올라서니 바로 앞 광채의 기와가 길게 가로막고 있어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마루에 앉아보라. 기와에서 흐르는 비스듬한 시선과 바람이 제법 시원하고 안온하다.다시 안채마루를 지나 처음의 사랑대청으로 나오니 향단이 한층 새롭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이를 일컫는가 싶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향단은-국내에서 아름다운 고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의 향단과 옥산서원 인근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선생이 지은 집이다.
양동마을(중요민속자료 189호)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양대문벌의 동족마을로 150여호의 전통가옥과 서당.사당등이 잘 보존돼 양반계층을대표하는 자료들과 유교사상.관습 등 중요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물(勿)'자 형국을 띤 양동마을은 경북 봉화의 '닭실', 안동 '하회마을', 의성 '천전'(川前, 혹은 내앞), 선산 '매헌'과 함께 경북 5대 길지(吉地)로 꼽힌다. 양동마을의 향단과 독락당의 아름다움을 2회에 걸쳐 싣는다.
경주에서 태어나 외숙인 손중돈에게 글을 배운 이언적(1491~1553년)은 문과에 급제, 1530년(중종 25년)에 사간원 사간에 임명되었다. 이후 김안로의 재등용에 반대하다 관직에서 쫓겨나 귀향한 후 독락당(보물 413호)을 짓고 학문에 열중하였다.
'손씨 대종가'인 관가정(손중돈 고택)에 대응하여 지어진 향단(보물 412호)은 그 위용이 대단하다. 회재선생이 지었지만 직접 살지는않았고, 동생에게 물려준 사실을 사료에서 확인했다고 장석하 경일대 교수는 밝힌다.
일부에서는 회재선생이 관찰사 재임시 집무실로 썼다고 하나,향단의 가옥구조는 완전한 살림집이다.
양동마을 찾아오는 길과 해설 문의 054)762-488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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