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지평에서 동아시아를 보면 한마디로 유교문화권이라 지적된다. 그런데 특이한 현상의 하나는 유독 한국에서 국민의 40%가그리스도교 신자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보다 훨씬 앞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일본은 아직도 기독교신자가 1%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서양인들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를 궁금하게 여긴다.
지난 8월 20일자 본 칼럼에서'동아시아 유교적 전통'에 대하여 썼는데, 그 후 흥미있는 일이 발생하였다. 서울의성균관에서 그 칼럼을 보고 지난 9월 16일 공자탄생 2553년 추계 석전제(釋奠祭)에 그 내용으로 기념강연을 해달라고 부탁해왔다.
사실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태어난 필자는 유교인이라고는 할 수 없고 그저 학자로서 동아시아의 유교현황을 보고한 것뿐인데, 그래도 성균관의 적극적 태도가 고맙고 이런 기회에 유림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겠다 싶어 응낙하였다. 처음으로 석전제에 참석하여동아시아에서도 원형(原型)으로 남아있는 유교적 종교행사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참석한 유림과 참관인들에게'동아시아 유교전통과 현대'라는 강연을 하였다.한·중·일의 유교의 현존을 설명하고, 철학, 윤리, 종교로서의 유교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유교의 현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하여는 특히 현대적 예학(禮學)과 유교미술의 발전에 관심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놀랍게도 그것이'유교신문'에 전문 게재되어 요즘 전국의 유림과 유지들로부터 가끔 전화를 받기도 한다.
강연에서 한국에서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관계에 대하여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일찍이 마테오 리치의보유론(補儒論)도 있었지만, 줄리아 칭(Julia Ching)이란 중국계 학자가 쓴'유교와 그리스도교'(Confucianism and Christianity)란책을 읽어보면 얼마나 두 종교가 유사점을 가지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김수환추기경도 "나는 사제(司祭)이기 전에 내 몸 속에 유교의피가 흐른다"고 하면서 심산(心山) 선생의 묘소에 절을 하였다. 어떤 학자는 "유교와 기독교의 유사성은 깊고 본질적이다. 그런데도한국의 기독교는 그 뿌리를 자각하지 못하고 아버지인 유교적 관행과 의식을 내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고 서글픈 일이다"고 적고 있다. 깊이 생각해 볼 대목이라 생각된다.
한국인에게는 분명 유교적 청교도주의(Confucian Puritanism)라 할까 원래부터 삶을 바르고 깨끗하게 살려는 정신과 염원이 있다. 어느면에서는 그런 정신이 음사(淫邪)와 부정(不淨)을 극복하려는 정갈한 종교심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래서 옛날 선비들은 무당의 푸닥거리를 용납하지 못하였다.
역사는 이러한 청결심과 순수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어쩌면 더욱 구정물같은 탁류로 흘러가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물량주의화하고, 정의와 사랑보다 이익과 타협으로 몰려간다.
이러한 변질현상에 대하여 한국의 유교와 그리스도교는 내면적 친화감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역사와 사회 속에서 공동의 사명을 찾아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공산화된 베트남에서도 근년에 유교의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향약(鄕約)을 부흥시켜 자율적인 법치주의를 모색하고 있다는 학자들의보고도 나오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종교현상과 비교해 보면 분명 한국에서는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큰 역량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정신적 잠재력을 소모적이거나 반목적인 방향으로가 아니라 조화적이고 협력적 방향으로 활용하여 보다 건전하고 건설적인 종교문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일한국의 정신적 기상도는 어떠해야할까? 여기에 신학자와 유학자가 아닌 한 사회과학자로서'세상보기'칼럼을 통하여 한국사회와 몸으로 체험하는 보람과 사명을 느낀다.
최종고 서울대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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