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당신도 혹 디지털 치매?

회사원 김상현(30)씨는 동료들 사이에서 가수로 알려질만큼 노래를 잘 부른다. 그러나 노래방 기계가 없으면 꿀먹은 벙어리. 가사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한 곡도 없다. 김씨는 "10년 넘게 불러온 애창곡도 마찬가지"라며, 노래방 기계가 가르쳐 주는 가사를 따라 부르다 보니 '이런 신세'가 됐다고 했다.

최희영(28·여)씨는 언젠가 집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당황한 적 있다. 그걸 입력시켜 둔 휴대폰의 단축키만 사용하다 보니 집 전화번호까지 잊어버린 것. 20~30대 직장인과 주부들 사이에 디지털 기기 없이는 간단한 정보조차 기억할 수 없는 '신종 건망증'이 확산되고 있다. 컴퓨터·휴대폰·휴대단말기 등 일상 생활 정보를 대신 기억해 주는 기기들이 쏟아져 나온 뒤 이들 기기만 믿고 있다가 간단한 것조차 기억하는데 소홀해진 것이다.

이런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주소·생일 등 평범한 정보는 물론 심한 경우 자신의 집 전화 번호조차 떠올리지 못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증상을 'IT건망증' 'IT멍청이'라는 신종 질환으로 분류, 별도로 치료하는 병원이 성업 중일 정도.

장해중(32)씨는 "아주 간단한 계산 때도 전자계산기를 누르는 습관이 붙어 머리로 한 계산을 믿을 수 없어서 다시 계산기로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주부 김현희씨는 "물건을 집어 계산대에 올려놓으면 모두 알아서 계산해 주기 때문에 매일 사게되는 물건의 값조차 제대로 모르게 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IT에 의존하면 간단하게 답을 얻을 수 있어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되고 이는 결국 뇌 기능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우리정신과 채성수 원장은 "노년의 치매와 달리 본인이 자각만하면 치료는 의외로 간단하게 할 수 있다"며, "반복적인 뇌 운동이 필요한 만큼 기기 사용에 의존치 말고 필요한 건 의식적으로 외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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