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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대통령의 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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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 개축을 두고 한나라당 대변인과 청와대 대변인이 '호화다 아니다'라며 한바탕 공방을 펼친 적이 있었다. 얌전히 생긴 남성의 야멸찬 말들과 얌전히 생긴 여성의 야무진 말들이 TV화면에서 마치 번뜩이는 창날끼리 매섭게 부딪치는 것처럼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을 때, 나는 좀 엉뚱한 생각을 떠올렸다. DJ도 낙향하지 않겠구나.

낙향(落鄕), 서울에서 시골 고향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 하필이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에다 낙마(落馬)나 낙엽(落葉)에 쓰는 '낙'을 달았으니 낙향엔 얼른 패배자의 이미지가 황혼의 햇살처럼 비치긴 하지만, 한양에서의 벼슬아치 노릇을 마친 세도가들이 늙은 몸으로 낙향하여 존중받는 어른 노릇을 하며 후학을 돌본 사례엔 멋과 낭만이 깃들어 있다.

백악관을 떠나 땅콩 농장으로 돌아갔다가 이번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지미 카터도 그런 경우에 넣을 수 있겠다. 그런데 왜 우리의 대통령들은 낙향을 모를까.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은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은 서울을 지키는 모양이고, 몇 달 뒤에 물러날 김대중 대통령도 전직 세 대통령의 전통을 이어받을 것이다.

너무 비대한 서울을 걱정해 왔다는 최고 권력 출신들이 서울 떠나기의 모범을 보여주지 못 하는 이유가 나는 궁금하다. 몹시 비싸기도 하고 정도 많이 든 서울 집을 차마 떠날 수 없는 것인가.

정치적으로 어려운 고비를 맞았을 때마다 든든한 언덕이 되어 주었고,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시간엔 누구보다 신나게 꽹과리를 치며 술추렴을 벌여 주었던 고향사람들의 곁으로 돌아가기가 뭐 그리 힘겨운 노릇인가.

고향 동구에 있을지 모르는 넉넉한 노거수를 쳐다보기가 뭐 그리 부끄럽기라도 한 것인가. 연희동, 상도동, 동교동. 서울의 이들 동네를 또다시 전직 대통령만 독거(獨居)하는 동네처럼 언론에 등장하게 만드는 그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집요한 집착 때문인가. 이런 메아리 없는 질문을 새삼 던져보는 나의 발길 옆으로 쓸쓸히 낙엽은 굴러간다.

이대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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