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의 서영무 초대 감독은 엄격한 감독이었다. 아마 시절부터 자신의 제자들이었던 선수들이 스타급으로 성장했지만 스파르타식 훈련을 요구하면서 강한 정신력을 주문했다.
훈련 방식도 아마 시절 하던대로 팀 위주의 훈련이었고 분야별, 개인별 훈련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김영덕 감독이 부임한 OB 정도가 그나마 프로의 색깔을 내면서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계적인 훈련을 실시했다.
다른 팀들은 말로만 프로였지, 선수들의 의식, 훈련 방식 등 아마 팀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보니 서 감독은 선수들에게 예절을 강조했으며 훈련이나 경기 내용이 맘에 안 들면 선수들에게 기합을 주거나 손을 대는 일도 있었다.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러한 관행이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올 시즌 중 기아 타이거스의 김성한 감독이 연습 중 선수를 때려 큰 물의를 빚기도 했지만 당시는 어느 정도 용인됐었다.
서 감독은 엄격했지만 우용득, 임신근 코치들과 선수들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선.후배간 정으로 뭉쳐 지냈다. 선수들은 배대웅,천보성 등의 고참 그룹과 오대석 이만수 박정환 등 신참 그룹으로 나눠져 있었다.
두 그룹의 나이 차가 있다 보니 고참은 고참끼리, 신참은 신참끼리 어울리게 됐다. 이렇다보니 팀의 구심점이 될 만한 선수가 별로 없었다. 주장 배대웅은 후배들을 무난하게 이끌었지만 후배들은 더 강력한'팀 리더'를 원하기도 했다.
오대석 전 롯데코치는 "당시에 삼성 선수들을 뭉치게 할 만한 선배가 있었으면 했죠. 구왕이 형이 그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외야수 정구왕은 직선적인 성격으로 서감독에게 선수들의 입장에서 할 말을 하는 선수였다. 오대석을 비롯한 후배들은 그런 그를 좋아했다. 이선희 삼성 2군투수코치는 "좀 괴팍한 면이 있는 친구였죠"라며 그를 떠올린다. 오대석 전 코치는 당시에 삼성에 '팀 리더'가 있었다면 응집력을 발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정구왕은 82년과 83년 두 시즌 동안 신통치 않은 성적을 낸 뒤 84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후신인 청보 핀토스로 트레이드됐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바른 말 잘 하는 그에게 미운 털이 박힌 때문인지도 몰랐다. 선수들은 그때서야 프로의 냉혹함을 깨닫게 된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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