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돔배기는 다른 어물전에서는 구경도 못합니더. 부산 가서 어렵게 구해왔지예". "설 차례상에 올리고 객지에서 올 아이들과 먹을긴데, 물건 좋은거야 알고 안왔니껴. 쪼매마 더 깎아 주이소...".
의성 대목장이 열린 17일. 어물전 주인과 할머니의 정겨운 흥정에 '대목장은 어물전부터'라는 말이 절로 실감난다.
최대의 명절인 설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산하던 농촌지역 5일장에 모처럼 활기가 넘쳐흐른다.
어둠이 채가시지 않은 오전 7시, 영하의 날씨도 아랑곳없이 단촌·사곡·점곡·옥산·춘산 등 두메에서 나온 촌로들이 고추·마늘·참깨는 물론 보자기에 싼 닭까지 들고 시장통으로 몰려들었다.
시장 한 모퉁이에서는 물건을 들거니 잡거니 흥정을 벌이느라 벌써 고성이 오갔고, 50년 전통의 국밥집 남선옥에는 뜨뜻한 국밥으로 속을 채우려는 장꾼들로 이미 발디딜 틈도 없다.
시끌벅적한 시골장 열기에 어느덧 새벽 어스름이 사라지고 추위도 한 발 물러섰다.
오전 10시가 되자 시장통 곳곳이 북적대며 특히 어물전에는 돔배기와 문어·조기·방어 등 차례상에 올릴 생선을 고르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생선을 장만하는 제주칼치집 주인 이제철(43·의성읍 도동리)씨 부부의 손놀림도 한치의 빈틈이 없다.
사곡 숯실에서 온 김일수(69) 할머니는 계속 깎아달라고 성화이고 옆에서 흥정을 지켜보던 한 영감님은 "오늘장 보다는 설 전날 막대목이 더 싸다"며 어물전을 빠져나갔다.
바로 옆 뻥튀기 가게에도 20여명의 장꾼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펑'소리와 함께 2대의 뻥튀기 기계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 속에는 강정을 만들기 위해 나온 권귀숙(67·의성읍 비봉리) 할머니의 손주 사랑도 서렸다.
시골 대목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허름한 천막으로 둘러싸인 대포집에는 일찌감치 장보기를 끝낸 촌로들이 권커니 자커니 술잔이 오간다.
얼큰한 해장국물에다 오랜만에 닭똥집·닭발 안주도 한접시 너끈하게 시켰다.
지난 대통령 선거이야기며 객지 나간 자식들 얘기에 술판도 거나해졌다.
손성웅(66·사곡면 신감리)씨는 "제수용품 거개가 수입산"이라며 "순 우리 농수산물로 차례상을 본지도 까마득하다"고 푸념을 곁들였다.
어느덧 시장이 한산하다.
어물전과 뻥튀기전에 다소의 웅성거림이 남았을 뿐이다.
"다음 장에 보시더...". 해가 서산으로 기울자 상인들도 하나둘 장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오늘만 같아라. 어려운 농촌현실이지만 그래도 명절 대목장에는 제법 흥청거림이 있다.
22일 단대목장에 대한 설레임을 골목마다 묻어두고 의성장은 그렇게 저물어간다.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촌로의 갈지자 걸음에 그림자가 길게 걸렸다.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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