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나는 마지막 농촌 시인,

잎으로 향불을 피우고 있는 자작나무의

아침 고별 미사가 울려지고 있는 동안 나는 서 있다.

하늘빛 들판의 오솔길로

곧 무쇠의 손님이 나오리라.

놀에 젖은 귀리,

검은 손바닥이 거두어들이리라.

생명이 없는 타인의 손바닥이여,

너희들이 있는 데서는 이 노래는 살아갈 수 없다!

이삭의 말들만 옛 주인을 생각하고 슬퍼하리라.

엣세닌'나는 마지막 농촌 시인' 일부(박형규 역)

러시아 혁명을 열렬히 지지했던 이 시인이 혁명 이후 생산 공장이 밀려와 전원을 파괴하는 것을 보고 절망해서 부른 시다.

무쇠의 손님, 즉 비생명적인 기계의 손들이 그가 사랑하던 자작나무 숲을 뭉개는 것을 보고 그는 자신을 농촌 최후의 시인이라 부르짖고 있다.

시인은 자기가 그리던 이상적인 세계가 와도 그 세계의 모순을 발견하고 다시 절망한다.

그것이 시인이다.

권기호〈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