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 일부.

못 잊을 사람과 한계령 같은 곳을 넘다가 폭설을 맞는 행운을 얻는다.

둘만이 누리고 싶었던 황홀의 시간을 뜻밖에도 폭설이 알리바이를 마련해 준다.

운명 스스로 한계를 넘어 엮어준 이 축복의 기회를 꿈꾸며 시인은 몸을 떨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자연스러움을 만나기란 외눈의 거북이 바다에 빠뜨린 바늘 찾기보다 어렵다.

그래서 때로 문학은 꿈꾸는 자를 위하여 이런 한계를 설정하고 또 끝을 맺는다.

권기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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