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국립대구박물관 말고 다른 박물관이 있나요?" 박물관이라 하면 희귀한 물건들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예쁘게 전시된 곳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고정관념만 바꾼다면 멀리 발품을 팔지 않고서도 우리 조상들의 삶을 간접체험하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다.
◇애니랜드 농경박물관
지난해 7월 운영자가 바뀌면서 탈바꿈을 하고 있는 애니랜드(구 냉천자연랜드·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안에 있다.
박물관 외관과 전시 상태는 다른 대형 박물관에 크게 못미치지만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떤 기구를 이용해 농사를 지었고 어떻게 생활했을까'라는 물음에 가장 시원한 해답을 줄 수 있는, 대구 유일의 농경 관련 자료 전시관이다.
전시물품이 320여종 730여점이나 된다.
입구에 들어서면 인분을 밭으로 나르는 데 사용했던 똥장군이 눈에 들어온다.
똥장군 주둥이는 지게에 얹어 옮길 때 내용물이 바깥으로 튕겨나오지 말라고 짚 뭉치로 막아 놓았다.
그 앞에는 크기가 똥장군 반만한 오줌장군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풍차처럼 생긴 것이 올라서서 웬만큼 용을 쓰지 않고는 작동하지 않을 것 같은 무자위(밭에 물 대던 기구)와 양손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용두레(물 대는 기구 일종)는 당시 농사일의 고달픔을 잘 대변해 준다.
소가 농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도구들도 많다, 곡식을 펴서 말리거나 몹쓸짓을 한 사람을 말아 매타작할 때 사용했음직한 크고 작은 멍석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베틀, 물레, 인두 등과 함께 부녀자들의 손에서 잠시도 떠날 수가 없었던 가마솥은 죽 먹고는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박물관 한쪽 구석에는 시대별로 통용되던 화폐가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은 문을 닫아놓을 때도 있다.
하지만 관리사무실(053-768-7300)로 연락하면 언제든지 관람할 수 있고,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경북대 야외박물관
'월파원(月坡園)'이라고도 하는 이 박물관은 경북대의 명물 중의 하나인 꽃시계 앞쪽에 있다.
곱게 깔린 잔디밭 위에 석탑, 부도, 불상, 문인석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각종 석조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나 같이 머리 부분을 탐욕스런 인간에게 내주고도 태연하게 앉아있는 석불이 인상적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져 어떤 무덤 앞에 서 있었을 서로 다른 표정의 문인석 16개는 다리가 아프지도 않은 듯 예나 지금이나 불평 한마디 없이 서 있다.
복지관쪽으로는 칠곡 약목고분과 대구 이천동 및 상인동에서 나온 고인돌도 복원, 전시하고 있다.
언제 찾아가도 싱그러운 젊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국영상박물관
지금은 유료주차장으로 이용되는, 옛날 대구극장 터 바로 맞은편 3층 건물(대구시 중구 화전동) 2층에 있다.
간판도 작고 전시공간도 25평에 불과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옛날 카메라 및 소형영화 카메라, 비디오카메라, 영사기 등 희귀한 영상기기가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이 박물관 주인은 사단법인 한국비디오작가협회 설립자이자 중앙회장인 김태환씨(64). 전시된 1천500여점은 김씨가 지난 30여년동안 각고의 노력을 들여 수집한 것이고 대부분 지금도 작동한다.
네 벽면을 가득 채운 유리 진열장 안에는 1930년대 국내 시판 당시 가격이 서울 종로의 20칸짜리 한옥과 맞먹었다는 카메라(CONTAX Ⅲ)도 있고, 1969년 인간이 달나라 갈 때 사용한 것을 기념해 철이 들어가는 부분을 18K 금을 사용해 1천400대만 만들었다는 카메라도 전시돼 있다.
1928년 12월에 만들어진 'Rolleiflex' 카메라는 현재 필름으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한다.
유리에 유액을 바른 건판필름도 보인다.
세상에 나온 지 60년이나 된 소형 영화카메라는 김씨가 손을 대자 '차르르'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지난 99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땐 현재 세를 주고 있는 1층까지도 전시실로 사용했지만 경비 때문에 규모를 줄였다고 한다.
주중(월요일~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 2인 이상 조를 지어 방문하면 김씨로부터 기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연락처는 053)427-5965.
◇대구교육대학 박물관
대구시 남구 대명동 학교 본관 5층에 있으며 민속전시실, 고고·역사전시실 등 4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교육대학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교과서 및 교육자료 전시실. 당시의 사회상황을 제목만으로도 잘 알 수 있는 교과서를 시대별로 분류해 전시해놓고 있다.
미군정기의 '우리말 도로찾기'는 해방 직후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사용하지 못했던 우리말 회복운동이 전개됐음을 보여주고 있고, 제2차교육과정(1963~1973)땐 '양잠', '조림보호'라는 교과목이 있어 새마을운동이 한창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밖에 교과서와 함께 전시된 낡은 오르간, 손때 묻은 주판 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련한 추억 속에 빠져들게 한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국정공휴일 등에는 개관하지 않기 때문에 주중을 이용해 찾아야 하는 것이 단점이다.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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