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상덕의 대중문화 엿보기-방화범과 OJ심슨

"방화범 그분이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시청하는 순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녹화라고는 하지만 지나가는 시민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인터뷰여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는 전문리포터의 입에서조차 '그분'으로 지칭되었다.

'혼자 죽는 게 억울해서···'라며 도심의 지하철에 불을 지른 방화범이다.

백 명을 훨씬 넘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고 수천억이 넘는 재산상의 손실을 입힌 피의자다.

그런데도 '그분'이라니… 지옥에서도 용서받기 어려울 것 같은 방화범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보호하는 것인가. 아니라면 정보제공에서 끝나면 된다고 믿는가. 결론은 둘 다 아닌 듯하다.

같은 미디어가 저녁에 반주삼아 소주를 마신 고위공무원의 언행은 뉴스로 크게 취급하여 '지하철 참사' 최고의 역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1995년 6월로 기억된다.

아내와 딸을 치과용 치실로 목졸라 죽이고 욕조에 담근 뒤 불을 지른 가장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8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는 법원으로부터 세 번이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그를 범인으로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의사이고 똑똑하며 돈이 많아서 '유전무죄'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한국판 OJ 심슨'운운하는 신문의 제목이 결정적이다.

'OJ 심슨'은 백인인 전처와 그의 정부를 참혹하게 죽인 범인으로 알려졌던 인물. 사건 이전에는 미국 프로풋볼 역사의 살아있는 전설이었고 인기영화배우였다.

사건 이후 지금, 그는 수억의 재산으로 법기술자들을 동원해 교묘하게 법의 응징을 빠져나간 '사악한 인간', 흑인임을 최대한 이용한 '용서받지 못할 인종주의자'로 비난받고 있다.

뉴스의 기본은 객관성, 분명함과 함께 정확성이다.

왜곡된 메시지는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방화범을 '그분'이라는 것이나 '한국판 OJ 심슨' 운운도 그렇다.

보도된 것을 그대로 잘 믿는 대중들에게는 분명 독약이 될 수 있다.

가뜩이나 무질서와 혼란이 가득한 세상이다.

악을 죽도록 미워해야 선이 제대로 자리를 잡는 것인데….

(대경대 방송연예제작학과 교수 sdhant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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