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저녁 서울 도심 빌딩 숲에 불이 켜질 무렵 광화문 교보빌딩 뒤편 소공원에는 촛불이 하나둘씩 켜졌다.
대구지하철 참사 서울추모제가 있은 이날 임시로 만들어진 영정 앞에 국화꽃을 건네는 50명 안팎 참가자들의 낮은 탄식만 흘렀다.
이 자리에는 지하철 참사를 알리기 위해 대구에서 출발, 이동거리 총 320여㎞를 달려온 신태영(34.게임업).신진석(33.자영업).전은영(21.여.학생)씨의 수척한 얼굴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지하철 화염 속에 사라진 형과 누나, 엄마를 떠올리며 천리길을 마다않고 달려왔다.
지난 8일 대구에서 도보로 출발해 상주, 청주, 수원, 안양을 거쳐 꼭 10일만에 서울에 도착한 것이다.
인대가 늘어지고 온몸이 땀 투성이지만 그들 식으로의 분노를 오직 '도보'로 푼 것이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무릎이 꺾일 정도의 고통 속에서도 묵묵히 걸었다.
걷다 지치면 쉬어 가고 허기질 때 물로 채웠다.
신진석씨는 "떠나보내는 누나(명희.43)를 마중하기 위해 걸었다"고 했다.
임신 7개월인 아내가 걱정스럽지만 애써 외면하고 걸었단다.
목에는 '대구지하철 2.18 참사, 다시는 이런 일이...'라는 팻말을 걸고, 참사가 마무리된 일이 아니며 아직도 도처에서 행해지고 있음을 알렸다고 했다.
그는 "어째 말이 됩니꺼. 일은 대구시가 저질러 놓고 뒷수습은 유가족이 나서고...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예". 전동차 이송 및 현장 정리에 대한 시의 안이한 대처를 질책했다.
신태영씨는 도보행진 도중 상주대.충북대.서울대를 찾아 "엄청난 사고가 났지만 기성세대는 금방 무관심해졌다"며 "순수한 열정을 가진 대학생 만큼은 대구의 아픔을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다리가 부어올라 차가운 땅바닥에 주저앉기도 했고 통곡하는 어느 할머니를 붙잡고 함께 울기도 했다.
그러나 남의 일처럼 외면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을 볼 때 가슴 아팠다고 한다.
전은영씨는 "어떤 택시기사 아저씨는 '빵이라도 사먹으라'며 만원짜리를 손에 쥐어주기도 했고 상주에서 만난 할머니 세 분은 우리를 붙잡고 통곡을 했다"고 회상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지하철참사 희생자 대표로 김충국(43.목사).강미자(47.여.주부).최병수(48.사업)씨도 상경했다.
김 목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보상이 아니다"면서 "재가 돼버린, 쓰레기 더미에 버려졌던 형제.자매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민중연대 대표인 오종렬씨는 추도사에서 "천마디 만마디 말을 한들 어떻게 고인들의 한을 위로할 수 있겠느냐"며 "그저 죄스럽고 원통하다"고 고개를 숙여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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