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줄리안 무어 연기란 이런것

줄리안 무어(43)의 연기에 '물이 올랐다'.

'물이 올랐다'는 시쳇말은 갓 신인을 넘긴 연기자에게나 어울리는 표현이다.

그러나 줄리안 무어는 이미 왕성한 활동의 시기를 넘기고 중년을 치닫는 여배우다.

그녀의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표현은 20년 가까운 '조연'을 청산하는 헌사이기도 하다.

최근작 '디 아워스', '파 프롬 헤븐'의 연기는 놀랍다.

한때 마돈나의 '육체의 증거'를 비롯해 고만고만한 영화의 조연으로 출연한 연기 비중을 고려하면 눈을 치켜뜨고 봐야 할 정도다.

23일 개봉 예정인 '파 프롬 헤븐'은 1950년대 미국 중산층 가정을 통해 부르주아적 가치의 허상을 폭로한 작품. 비록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니콜 키드먼에게 여우주연상을 빼앗겼지만, 그녀의 연기는 관객을 꼼짝달싹 못하도록 한다.

아이를 둘 낳고 지극히 모범적으로 살아가는 남부 중산층 주부 캐시(줄리안 무어). 어느 날 남편(데니스 퀘이드)의 동성애를 확인한다.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하는 이가 흑인 정원사 에드먼드. 그러나 흑인 차별이 심한 백인들은 그들의 인간적 유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줄리안 무어는 끝까지 차분하면서도 내면을 삭이는 연기로 극을 압도한다.

사회의 금기에 도전하면서도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여인상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절절하게 만든다.

'디 아워스'에서도 무어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빠져 있는 아내 로라로 출연해 놀라운 내면 연기를 선보였다.

1951년 미국 LA. 평온한 가정의 판에 박힌 일상에 염증을 느낀 로라는 호텔방에서 자살을 꿈꾼다.

모든 것과 소통할 수 없는 여인의 숨 막히는 일상을 무어는 눈빛과 숨결, 떨리는 입술로 잘 표현해 냈다.

울프 역의 니콜 키드먼보다 무어의 연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다.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지만 무어는 독립영화와 블록버스터 영화 모두에서 환영받는 여배우로 손꼽힌다.

로버트 알트만의 '숏컷'에 출연하여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또한 토드 헤인즈의 '세이프' 등의 여러 편의 독립영화에 출연하여 찬사를 받았다.

1999년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발탁되어 '쥬라기 공원2'에 캐스팅되어 주목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스릴러 영화 '한니발'에서 식육 살인마인 안소니 홉킨스의 상대역을 맡아 조디 포스터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 주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화제작 '부기 나이트'로 1997년 처음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1999년 닐 조단 감독의 전쟁 로맨스 영화 '애수'에서 랄프 파인즈와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사라 역으로 2번째 노미네이트 되었다.

특히 99년작 '매그놀리아'는 죽어가는 늙은 남편을 지키는 약물중독자 아내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펼쳤다.

그럼에도 상복은 없는 편. 제10회 선댄스 영화제의 파이퍼-히직상(독립영화 공로상) 등 수상은 주로 독립영화들뿐이었다.

그러나 2003년은 그녀의 해다.

피어스 브로스난과 공연하는 'Laws of Attraction'을 비롯해 'Freedomland', 'The Forgotten', 'Without Apparent Motive' 등 화제작에 주연으로 잇따라 발탁됐기 때문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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