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예 공모전 대필.금품수수 얼룩

3일 서예계 인사들이 공모전에서 대필, 금품수수 등으로 경찰에 대거 구속되자, 서예계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서예가는 "비리가 만연한 현실에 비춰 경찰의 수사결과가 상당히 미진하다는 느낌"이라면서 서예계의 정화를 위해 전면적인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구에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 지난해부터 모대학 교수 한명을 비롯해 몇몇 서예가들이 서울경찰청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지만 사법처리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예 공모전은 '복마전'이라 불릴 만큼 온갖 추문으로 얼룩져 있지만, 수십년동안 하나도 개선되지 않고 운영되는 구태의 전형이다.

▲연줄과 뒷돈이 없으면 입상도 어렵다=전국 단위의 서예 공모전에서 입상하려면 '연줄'과 '뒷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정설이다.

공모전이 있을 때면 심사위원과 운영위원, 응모자간에 몇백만원에서 몇천만원이 오고간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 관계자는 "특선을 받으려면 심사위원 2명을 '구워 삶아야' 하고, 1천만원 안팎의 돈이 들어가는 게 불문율"이라고 말했다.

사문, 지역 등을 중시하는 서예계의 특성에 미뤄 '연줄'이 없는 응모자의 경우 아무리 실력이 있더라도 낙선을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 전해 우수상을 받은 응모자가 다음해에 낙선의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사위원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6개월짜리 초보가 특선을 하기도 하고, 뛰어난 실력자가 낙선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 전국 공모전에서 심사를 했던 한 서예가는 "심사위원들이 청탁받은 응모자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 못해 메모를 보려고 화장실에 들락날락거리기도 하고, 심지어 청탁받은 작품의 사진을 찍어와 심사장에서 맞춰보기도 했다"고 실태를 전했다.

▲지역에는 부정이 없나?=대구.경북에서 열리는 큰 공모전의 경우 서울에 비해서는 한결 나은 편이다.

한 관계자는 "대구에는 몇년전만 해도 대필, 뒷돈 등의 말썽이 끊이지 않았는데, '문제 인사'들이 현장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바람에 요즘에는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사문, 학교 등 '연줄'에 의한 심사는 여전해 매년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다.

대구서예대전의 경우만 봐도 매년 대상 입상자는 대구미술협회 실세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고, 지난해 구미에서 열린 한 서예공모전에는 심사위원이 자신의 제자를 대상수상자로 뽑은 적도 있다.

한 관계자는 "특정 서예가가 어떤 공모전의 운영위원, 심사위원이 되면 다른 서예가들의 제자들이 '들러리 서기 싫다'며 응모를 포기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심사 과정에 영향력을 발휘해 입상을 시켜주고, 자신의 작품을 사주거나 학원에 '협조비'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또 실체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단체가 주최하는 서예공모전의 경우 적잖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일부 공모전은 응모자 참가비(점당 4,5만원)를 노리고 입상을 남발하기도 하고, 당초 약속한 상금을 주지 않고 떼먹기도 한다.

이같은 현상은 전국에 수천여개를 헤아리는 서예학원의 생존을 위한 측면이 크다.

학원생의 다수를 이루는 주부, 은퇴 노인 등이 입상을 간절히 원하고, 나아가 등단에 해당되는 '초대작가'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서예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적잖은 비리 방지책이 나왔지만 발의자와 실행자가 비리의 주범이기 때문에 제대로 될 수 없었다"면서 "심사위원, 나아가 서예가들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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