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해바라기를 심는 사람

우리 아파트 앞에는 주민들이 하천부지를 개간해서 옥수수, 고구마, 상추, 고추, 마늘, 참깨 따위를 키운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여름들판만 보면 마음이 설렌다.

저녁 무렵이면 아이의 손을 잡고 두렁 사이를 돌아다니며 도라지꽃, 개망초, 쑥갓꽃, 질경이의 이름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옥수수 수염을 만져보게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텃밭에 채소를 심는데 유독 해바라기를 가득 심어놓은 머리가 약간 벗겨진 아저씨가 있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그 아저씨에게 왜 해바라기를 심으셨느냐고 묻는다.

"사람들 그냥 보라꼬. 해바라기 보마 힘이 막 난다 아인교". 대답을 하며 아저씨가 해바라기처럼 웃으신다.

푸르고 적요한 들판이 해바라기 덕분에 잔치마당처럼 술렁인다.

해바라기의 꽃말은 빛, 숭배, 동경이라고 한다.

한여름의 강렬한 태양 아래서 그리움으로 활활 타오르는 얼굴로 서있는 해바라기의 모습은 어떤 고난이 닥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의지가 굳은 사람처럼 보인다.

삶이 아무리 사막처럼 메말랐어도, 아직도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해바라기 같은 희망을 심는 사람이 있다.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하여,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자기가 가진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 해바라기를 심은 저 아저씨처럼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 희망을 파종하고 있으므로 아직도 이 세상은 살만한 게 아닐까?

며칠 간 쉬지 않고 내린 비로 진흙이 잔뜩 묻은 여린 채소와 풀들이 흙을 털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비가 갠 아침나절, 사람들이 채소의 잎사귀에 묻은 흙을 털어 내기도 하고 고구마순과 들깨 모종을 하고 있다.

저 조그만 땅뙈기에 희망을 모종하는 사람들.

간만에 얼굴을 내민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 꽃이 어둔 밤의 가로등처럼 환하다.

해바라기의 노란 웃음소리가 푸른 들판의 가슴속으로 물결처럼 부드럽게 흘러 들어간다.

시인 김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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