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열린 여성주간 기념행사에서 특강을 하러 온 서울 모 대학의 여교수와 잠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해서 그 힘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그 교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길고 긴 시간강사 시절 열심히 술자리를 따라다닌 덕분"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모든 정보가 오가며 끈끈한 인간관계의 장이 형성되는 저녁 만남을 마다하고는 그 무엇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서 공부에 기울이는 노력 못지않게 저녁회식자리에도 열심히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 교수의 말은 물론 농담이 섞였지만 남성위주의 우리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주부들이 많이 듣는 가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에 주부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다.
그런데 그들중 대부분은 직장여성들을 크게 부러워하고 직업없는 가정주부인 자신에 대해서는 열등감을 느끼거나 심지어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적지않음을 보게 된다.
'구세대'와 '신세대'를 구분하는 우스개 중에 '구여성'과 '신여성', '구주부'와 '신주부'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
'시집간다'고 말하는 사람은 구여성, '결혼한다'는 사람은 신여성,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고 '찝찝한 불륜'이라 치부하면 구여성, '결혼한 여성도 다른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이해하면 신여성이라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사회 각 분야에서 눈에 띄게 활약하는 여성들을 두고 '너무 튄다'고 못마땅해 하는 여성은 구여성,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는 여성은 신여성이라 일컫는다고.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세칭 구여성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20년전의 첫사랑을 찾아 어느날 떠나가 버린 남편 대신 혼자서 고생하며 두 딸을 키우면서도 오히려 남편을 '순수한 사람'으로 이해하는, 바보스러울 만큼 착한 뽀송이 엄마. 하루 온종일 뜨개질로 한달 20만원을 벌어도 대학 다니는 아이들 학비 보태느라 자기를 위해선 단돈 2천원도 못쓴다는 영덕의 훈이 엄마. 때마다 칼국수며 뜨끈한 수제비로 시어른들을 봉양하며 틈틈이 도서관에서 한문이랑 독서토론회 모임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바람꽃 며느리. 일자리를 잃은 남편에게 낚시터로 도시락을 날라다주면서 기 살려주려 애쓰고, 조그만 분식집 열어 열심히 살겠노라며 이슬같은 눈물을 흘리던 태전동의 한 주부.
방송을 통해 만나는 그들은 비록 전문직업을 갖고 자기 분야에서 우뚝 서있는 앞서가는 여성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닥쳐온 현실을 참고 인내하면서 작은 능력이라도 자신의 힘을 인정하고 발휘해 나가는 강인한 어머니들이다
사회지도층의 끝없는 부정부패와 제밥그릇 싸움이 그치지 않는 요즘 이름없는 많은 주부들의 성실한 삶의 태도가 더욱 값지게 여겨진다.'술자리의 힘'보다 더 큰 것은 소박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어머니의 힘'이 아닐까.
김영숙(KBS 대구방송총국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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