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업·창업-보안카메라 제조 시큐릭스 양기수 대표

재수. 전문대 전자과 졸업. 150만원짜리 월급쟁이. 한번의 이직과 두번째 사직….

양기수(28)씨의 20대 이력서는 이렇게 '초라'하게 진행됐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어렸을 때부터 툭하면 TV 케이스를 뜯거나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고 철학서적을 뒤지더니 결국 저렇게 됐구나 하는 주위의 삐딱한 시선이 따라 다녔다.

하지만 양씨의 인생 색깔은 올들어 확 바뀌었다.

2년 전이던 2001년 5월 '큰 맘 먹고' 창업한 감시카메라 제조업체 '시큐릭스'가 지난 4월을 기점으로 반석 위에 올라선 것. 월 평균 매출 3천만원. 부가가치가 커 자재비와 3명의 직원, 4명의 영업사원 인건비를 빼고도 매출의 절반 이상이 수익으로 남는다.

몇 달만에 수천만원을 만졌다.

편의점, 할인점, 약국, 식당, 사우나, 화장품점 등 60여 곳에서 양씨가 만든 카메라를 사 갔다.

24시간 영업점이 늘고 현금 취급 업소가 증가하면서 가게 주인이 집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가게 돌아가는 상황을 실시간 파악하려는 수요가 급증, 카메라 판매가 늘고 있는 것.

양씨의 카메라는 이미 해외에까지 진출했다.

일본의 한 우동 체인점이 시큐릭스가 만든 카메라를 구입해 간 것. 종합상사 ㈜삼천리의 미국 법인은 미국에 갖다 팔겠다고 나섰다.

가격이 싸고 품질이 우수해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것.

"대학 졸업 후 첫번째 직장에 다닐 때였습니다.

시스템 점검을 위해 은행에 갔더니 은행 직원과 고객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방금 입금한 돈 액수와 통장에 찍힌 것이 다르다는 것이었지요. 결국 은행 폐쇄회로TV를 통해 사실을 알아보기로 했지만 화질이 나빠 시비가 가려지지 못했습니다.

그 때 눈이 확 뜨였습니다.

보안카메라구나!"

디지털 비디오(Digital Video Recorder)를 배우려고 다니던 시스템 회사를 그만두고 2000년 봄 한 정보통신 업체에 취직했다.

그리고 4개월 뒤 양씨는 사표를 내고 계명대 창업보육센터에 자신의 둥지를 만들었다.

앞서 시중에 나와 있던 대형업체 제품 가격은 300만원대. 딴 길을 찾아 나섰다.

은행·할인점 등 대형업소가 아닌 약국·편의점·식당 등 소형업소가 저렴한 가격에 장치할 수 있는 카메라 개발이 필요함을 느꼈다.

틈새 시장을 파고드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판단했다.

기존 제품은 아날로그 카메라를 쓰고 비싼 하드웨어를 갖춰야 하는 것. 그는 디지털 카메라를 쓰고 소프트웨어로 작동이 가능한 방법을 택했다.

드디어 양씨의 제품은 선명한 화질을 유지하면서도 가격을 90만원대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개발이 완료된 것은 작년 9월이었다.

그 다음에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난관은 역시 판매 문제. "판로가 문제였습니다.

1억5천여만원을 쏟아부어 제품 개발을 끝냈지만 누가 알아줘야지요. 하늘에 맹세코 내 제품은 훌륭한데 사 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투자금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빚 반환 독촉이 쏟아졌습니다.

채권자가 찾아올까 봐 늘 사무실 불을 꺼 둬야 했습니다.

삶이 비참해집디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자 대로가 트였다.

전 직장 선배에게 고충을 털어놨다.

동종 업계의 사정을 잘 아는 선배는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줬다.

덕분에 판로가 틔었고 주문이 쏟아졌다.

양씨는 이제 앞으로의 전망이 더 밝아 보인다고 했다.

인권침해 논란이 있긴 하지만 감시카메라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것. 컴퓨터 회사도 양씨 제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컴퓨터에 끼워 팔겠다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그야말로 날개를 얻게 되는 격이 되리라고 양씨는 기대했다.

앞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양씨의 4년 전 예측이 드디어 맞아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창업보육센터에 들어온 덕분에 창업 자금은 거의 들지 않았습니다.

연구개발비만 투자하면 됐지요. 이런 제도가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국가가 아이디어를 가진 기술자들을 조금만 밀어주면 우리나라는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양씨는 조금 엉뚱해 보이는 사람들을 잘 키워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내보였다.

다소 엉뚱한 구석이 있어야 창의적이고 미래를 보는 눈이 밝아진다는 것. 자신 역시 어렸을 때부터 TV·라디오 뜯고 맞추느라 '엉뚱한 놈'이라고 야단맞았고, 고교 시절엔 철학서적 읽는다고 욕을 먹었다고 했다.

"실력은 있는데 전문대 나왔다고 월급 적게 주고 무시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저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지요. 그러나 불만만 품고 살 순 없었습니다.

아니다 싶으면 결단을 내리는 것이 젊은이 아닙니까?"

그는 근래 몇달 새 돈을 조금 벌었지만 차 사고 옷 사고 먹을 거리 사는 데 쓰지는 않는다고 했다.

할 일이 많아 모두 재투자한다는 것.

"이 분야에서 최고가 돼 돈을 조금 모은다면 컴퓨터 학원을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사회가 바뀌려면 교육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교육이 없어 뛰어난 어린이들의 재능이 사장됩니다

전문가가 교육하지 않아 프로그램이 엉망입니다.

쓰이지도 않는 한물 간 교육 프로그램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가 그런 것을 바꿔보고 싶습니다". 양씨는 엉뚱한 사고를 한번 더 쳐 보겠다고 했다.

053)620-2044.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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